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의 토목공학과에 재학 중인 전모 씨(28)는 이번 겨울방학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취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님과 마주 앉는 게 불편해서다. 전문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2006년 대학에 입학한 전 씨에게 토목학과를 추천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사업장이 가장 높은 수익을 낼 때였다.
하지만 전 씨가 졸업할 때가 되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012년 상반기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든 전 씨는 그동안 40여 곳의 건설사에 원서를 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원서를 쓸 수 있는 곳은 점점 줄고 있다. 토목직렬은 아예 뽑지 않거나 뽑아도 한두 명에 그칠 때가 많다. 전 씨는 “60명 정원 중 토목학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친구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며 한숨지었다.
건설 경기 및 토목 산업이 심각한 침체를 겪으면서 토목학과 학생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 1순위로 토목 관련 학과가 지목되고 토목학과에 입학했던 학생들도 전공을 바꾸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전공별 건강보험 연계 취업 현황에 따르면 2013년에 졸업한 전국 4년제 대학 토목학과 졸업생(155개 대학·4389명·산업대 제외)의 취업률은 58.6%에 머물렀다. 공학계열 가운데 조경학, 도시공학과 함께 취업률이 60%를 밑돌았다. 같은 해 공학계열 전체 평균 취업률은 67.4%였다. 토목학과의 취업률은 2009년 72.9%를 보인 이후 2년 연속 하락해 2012년(59.7%) 처음으로 취업률이 60% 아래로 떨어졌다.
▼ “SOC 핵심인력 양성에 차질 우려” ▼
박형근 충북대 도시공학부 교수는 “최근 토목학과 출신 졸업생의 전공 일치 취업률은 50%가 채 되지 않는 실정”이라며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대부분 졸업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취업률 저하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대학들은 조정대상 1순위로 토목학과를 거론하고 있다.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동아대는 100명인 토목공학과 정원을 2015학년도부터 80명으로 줄이기로 했고 동의대도 모집정원 70명 중 1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토목학과의 위기는 국내 토목업의 침체 때문이다. 국내 토목사업 수주액은 2009년 54조1485억 원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줄어 지난해 32조4000억 원에 머물렀다. 정부는 복지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2017년까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계속 줄인다는 계획이어서 토목 산업의 위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은정 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토목 산업의 불황이 한국의 토목을 책임질 인재 육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향후 국가 발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력의 누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토목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환경, 조경 부문 등 다양한 토목업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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