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된 반정부 시위로… GDP 10% 차지 관광업 타격
민간투자-소비심리까지 꽁꽁… 작년 4분기 1% 미만 성장
美-日 선진국 경제 회복되며… 해외무역 증가 기대감에 위안
지난해 12월 22일 태국 방콕시내 대표적인 관광쇼핑 지역인 랏차쁘라송 사거리에서 20여만 명이 운집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하라” “결국 우리가 승리한다” 등의 구호를 쓴 피켓을 들고 정권 퇴진과 총선 연기, 국민의회 설립 등을 요구했다. 이곳은 2010년 태국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가 시위를 벌인 곳이다. 당시에는 시위대와 군이 충돌해 무려 91명이 숨졌다. 다행히 이날 시위는 큰 충돌 없이 끝났지만 센트럴월드쇼핑센터, 게이손백화점, 시암파라곤백화점 등은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로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잉락 친나왓 총리가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사면을 위해 ‘정치 관련자 포괄사면법안’을 발의하면서 촉발됐다. 잉락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부패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수십만 방콕 시민의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고 있다. 국민민주개혁위원회는 “정치개혁 없이는 총선도 없다”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소속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총선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 2일 총선이 예정대로 실시되고 정국 혼란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방콕 시민들의 의견은 매우 부정적이다. 현재의 선거 시스템으로는 탁신계의 재집권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반정부 시위대는 총선 무산 및 잉락 임시정부 총리의 즉각적 사퇴를 요구하며 13일 방콕 봉쇄 총궐기를 시작했다.
태국 시민들은 시위만으로 총선을 무산시키고 탁신계 정부를 축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는 방콕을 극도로 혼란하게 만들어 군부가 개입해 현 정권을 축출하도록 한 뒤 국민의회를 구성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준내전 사태를 경험한 방콕 시민들은 또다시 비극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반부패 정치개혁은 태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전혀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재계 학계 경제계 등에서 다양한 제안을 내고 있지만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정국 불안은 태국 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에 따르면 장기화된 반정부 시위가 관광업, 민간투자, 국가예산지출 및 소비심리에 타격을 줘 지난해 4분기(10∼12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의회가 해산되면서 2조 밧(약 64조 원) 상당의 기반시설 건설 프로젝트와 3000억 밧(약 10조 원) 규모의 통합 물 관리 사업도 차기 정부로 미뤄졌다. 태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인 대규모 정부예산 집행사업들이 지연되면서 태국 경제는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합 물 관리 사업은 한국 업체가 전체 사업의 50% 이상을 수주해 계약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지연돼 앞으로 진행 여부가 불확실하게 됐다.
태국 GDP의 10%를 차지하는 관광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이어가던 관광업이 반정부 시위 영향으로 겨울철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이 10%대로 떨어졌다. 개인들도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계획을 미루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주식 894억 밧(약 2조9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이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태국은 정치 불안 때문에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국 국민들이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에 태국 특유의 융화력으로 해결의 실마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태국 경제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암울한 경제상황에서도 태국의 수출은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며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과의 국경무역은 전년보다 27% 늘었다. 태국이 정치적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아세안 경제 중심 국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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