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인 A사는 최근 ‘임금체계 개편-중국 공장 증설-국내 설비 증설-개성공단 진출’이라는 4단계 시나리오를 세웠다. 지난해 12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A사는 생산직 직원들에게 정기상여금으로 기본급의 800%를 준다. 대법원 판결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임금이 21% 오르는 셈이 된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야근수당과 주말 특근수당 등이 오르기 때문이다. 한 해 영업이익을 거의 쏟아 부어야 할 정도다.
A사는 아예 근로계약서에 ‘정기상여금’ 항목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기상여금 중 최대 50%를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비정기 상여금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기본급에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직원 임금은 7%가량 오른다.
반면 A사 노조는 “최근 3년간 지급하지 않은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앞으로 임금을 더 받는 것은 물론 과거에 받지 않은 임금까지 소급해서 받으려는 의도다.
통상임금 판결이 나온 후 임금체계 개편을 놓고 노조와 신경전을 벌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정기상여금을 줄이거나 잔업을 없애려 하지만 노조는 기존 임금체계를 지켜내려고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 잔업 없애기 위해 설비 증설
A사는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재 건립을 추진 중인 중국 공장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납품기한을 맞추려면 무턱대고 잔업을 없앨 순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사는 2만6400m² 규모의 중국 난징(南京) 용지에 건축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A사 대표는 “최근 공장을 더 크게 짓기 위해 설계 변경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해외 공장으로도 부족하면 국내에 설비를 늘릴 계획이다. 인건비가 싼 개성공단 진출까지 고려하고 있다. A사 대표는 “임금체계를 바꾸지 못한다면 잔업이라도 없애야 회사가 살 수 있다”고 털어놨다.
자동차부품 회사인 B사는 생산 설비를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B사 측은 “생산 라인을 새로 까는 데 250억 원이 든다”며 “라인을 늘리는 대신 잔업을 없애면 5년 뒤엔 본전은 뽑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B사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통상임금으로 월급이 늘기는커녕 기존에 해오던 잔업이 없어지면서 월급이 줄어들게 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정기상여금의 비율을 바꾸거나 생산라인 증설 여부는 모두 단협에 명시된 사항”이라며 “사측이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단협 사항을 바꾸려고 한다면 사활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태스크포스 만드는 대기업
일부 대기업은 최근 통상임금을 비롯해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 최근 노동계 현안이 산적하자 이참에 인사체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신세계는 지난해 12월 24일 임금체계, 근로시간, 신입사원 채용 절차 등 인사체계 전반을 개편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LG그룹도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주력 계열사들이 자체적으로 인사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평생직장이 사라진 이후 올해가 기업의 인사 및 임금체계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은 “한국 노동시장이 ‘얼마짜리 일을 한다’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잡혀 있지 않다 보니 불필요한 수당이 많이 생긴 것”이라며 “직무에 따라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되 성과에 따른 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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