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박일주 씨(69)는 2005년 무농약 인증을 2008년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1ha 밭에서 포도를 키우는 박 씨의 연간 매출액은 8000만 원. 그의 영농비결은 땅심을 키우는 것이다. 완숙퇴비를 듬뿍 사용하고 토양 내에 미생물이 풍부해지도록 미강, 쌀겨, 한방영양제를 혼합해 넣어준다. 빗물 대신 대나무 숯과 맥반석, 세라믹, 옥돌로 정수한 지하수를 효소와 섞어 1주에 2∼3번씩 뿌려준다. 유기농으로 키운 포도는 당도가 17∼18Brix(브릭스)로 높다. 값이 일반 포도보다 20%가량 비싸지만 포도를 사려고 농장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줄을 이어 생산한 전량을 직거래로 판다. 박 씨는 친환경 관련 교육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기술을 이웃 농가에 아낌없이 전파해 2012년 전남도로부터 친환경 유기농 명인 14호로 선정됐다. #2 순천만에서 농사를 짓는 박승호 씨(63)는 ‘고집불통 농사꾼’으로 통한다. 친환경 농업을 시작한 뒤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겪었지만 신념을 잃지 않고 15년 넘도록 고집스럽게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경기 성남시 농협중앙회 성남유통센터에서 열린 제22회 전국으뜸농산물한마당 행사에서 ‘고집불통 오색미’로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박 씨는 지난해 10여 농가와 함께 특수·기능성 쌀 가공 브랜드 시범사업으로 50ha에 홍미, 녹미, 백진주, 아랑향찰, 하이아미 등 5품종을 재배했다. 이 품종들은 수확량은 다소 떨어지지만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돼 밥맛이 좋다. 박 씨는 “종자 소독부터 잡초 제거, 해충 포획 등 손이 많이 가지만 소비자가 먹는 것이 내 자식이 먹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벼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3 전남에서 길러지고 있는 축산동물은 다른 지역의 동물보다 월등한 수준의 복지를 누린다. 2006년부터 도입된 이른바 ‘동물복지형’ 축산 덕분이다. 전남 담양군 무정면에서 ‘한농다란’을 운영하는 송홍주 씨(61)는 닭을 방목해서 키운다. 숲 속 방목장에서 자라는 닭은 지렁이, 개미, 땅강아지 등을 잡아먹고 충분한 햇볕을 쬐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는다. 닭 사료도 차별화하고 있다. 발효시킨 유기농 곡물과 야생 찻잎을 1등급 식수와 함께 준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6000여 마리를 키우는 송 씨는 하루에 4000여 개 달걀을 거둔다. 자연 방사에 무(無)항생제 유정란이라 일반 달걀보다 훨씬 비싼 개당 700∼900원에 팔린다. 연 매출 5억 원, 순이익은 1억5000만 원 이상이다. 그는 2011년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신지식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남도로부터 ‘유기농 명인 9호’에 선정됐다. 전국 최대 친환경 농산물 공급기지
전남이 ‘친환경농업 1번지’를 넘어 ‘녹색 생명산업 수도’로 도약하고 있다. 10년에 걸친 노력으로 쌀, 과수, 원예, 축산 등 농업 전 분야에서 전국 최대 친환경 농산물 공급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 시대 소외되고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던 전남이 기회의 땅으로 바뀐 것이다.
전남도가 친환경 농업에 눈을 돌린 것은 10년 전인 2004년. 농업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산업인 데다 수입개방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밖에 없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전남도는 ‘생명식품산업 육성 1·2차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먼저 친환경 표준 농법을 보급하고 친환경 농자재 구입비를 지원했다. 친환경농업 교육관을 설치해 해마다 10만 명 이상의 농어민을 교육했다. 매년 1만여 명의 도시민을 초청해 친환경 먹거리 생산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2년 말 현재 전남지역 친환경농산물(유기농·무농약) 인증면적은 전국 인증면적(12만7493ha)의 60%에 해당하는 7만5948ha로, 전국 1위다. 친환경 농업 선포 원년인 2004년과 비교했을 때 유기농 면적은 22배, 무농약은 67배, 농가 수는 16배가 늘었다. 전남도는 2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올해 유기농을 4만6700ha, 무농약을 9만3300ha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투입하는 예산이 1조6620억 원이다. 이 금액은 전남도 한 해 예산의 36%에 해당한다.
2중 3중 안전검사로 소비자 신뢰 확보
전남도는 소비자에게 전남산 농산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전국 최초로 ‘소비자 안심보험’과 ‘유기농 종합보험’을 도입한 것이다. 소비자 안심보험은 친환경 인증 농산물에서 잔류농약이 발생하거나 부패·훼손된 것을 먹고 피해를 본 경우 최대 1억 원까지 보상해 준다. 유기농 종합보험은 친환경 농업인이 재해피해를 봤을 때 지원해주는 제도다. 현재 이 보험에는 1924농가가 가입돼 있다.
잔류농약 검사도 한층 강화했다. 생산자단체가 자체 검사한 농산물을 자치단체가 다시 검사한다. 이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표본조사까지 이뤄져 부적격 농산물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위삼섭 전남도 친환경농업과장은 “새끼 우렁이 농법이 널리 보급돼 일부 조생종 벼 경작지를 제외하고 전남 논은 거의 전부 무(無)제초제 논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안전한 먹거리 생산기지로서 명성은 수도권 학교 급식에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전남도는 서울시내 1293개 학교, 경기도 내 814개 학교에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동물복지형 녹색축산은 전남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전남은 1934년 이후 단 한 번도 구제역이 발견되지 않은 ‘축산 청정지역’이다. 전남도는 2006년 친환경축산 5개년 계획을 세워 농가에 무항생제 사료와 유효 미생물을 공급하고 동물운동장을 확대하는 등 축산 환경 개선에 나서 친환경축산 인증 축산농가가 지난해 말에는 2038농가로 늘어나 전국 5633농가의 36%를 차지했다.
친환경 먹거리 생산으로 농민들 살림살이도 좋아졌다. 연간 소득(순이익) 1억 원 이상의 부농이 2005년 621가구에서 지난해에는 4065가구로 늘었다. 2011년 전국 평균 농가소득(3014만8000원)은 전년보다 6.1% 감소했으나 전남은 오히려 10.1% 증가했다. 가구당 농가 부채는 9개 도 가운데 전남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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