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3분의1만 정기상여금 나눠 지급해 통상임금 포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4일 03시 00분


[통상임금 가이드라인 발표]
노동계 “使, 재직자 기준 악용 우려”
“나머지 기업도 편법 적용 가능성
근무일수 비례해 상여금 주라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나”

고용노동부가 23일 통상임금과 관련해 발표한 노사지도지침을 놓고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고용부가 내린 지침을 실제 현장에 적용할 경우 임금 인상폭이 당초 예상보다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 고용부는 정기상여금이라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지에 따라 통상임금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정 시점에만 지급되고, 그 시점 이전에 퇴직한 사람에게 근무 일수에 비례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

임무송 근로개선정책관은 “대법원은 일단 휴가비 등 복리후생비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렸다”면서도 “그러나 정기상여금 역시 복리후생비처럼 특정 시점에만 지급된다면 통상임금 적용에서 제외해야 하고, 대법원 판결문에도 그런 법리 해석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이 같은 지침이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시점에만 상여금이 지급되더라도 상여금 지급 전 퇴직자에게는 근무 일수에 비례해 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 판례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고용부 지침은 모든 상여금과 수당에 ‘재직자 기준’을 추가하는 등의 편법이 조장될 여지가 크다”며 “특히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사용자들이 이런 지침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지침은 고용부가 대법원 판결에는 반하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준 셈”이라며 “고용부가 묘하게 머리를 잘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고용부 지침을 적용할 경우 실제 임금 인상폭이 당초 예상보다 작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가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지침을 적용하면 3분의 1 정도의 기업만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소급 청구를 제한하면서 내세운 ‘신의 성실의 원칙’이 적용되는 시점도 논란거리다. 대법원은 지난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과거 소급분에 대해서는 ‘신의 성실의 원칙’을 적용해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 이후 합의에 대해서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고용부는 판결 이후 노사가 새로운 합의를 한 시점부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 지침을 내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고용부 지침은 그동안 판례로 인정돼 온 체불임금까지 못 받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를 정면으로 뒤집는 지침”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통상임금#정기상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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