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이 계속되다 보니 사람들이 엔진오일도 안 바꿉니다. 기업들도 기계설비에 기름칠하는 비용마저 아끼고 있어요.”
최근 국내 한 정유회사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실제 요즘 운전자들 중에는 주행거리 5000km, 1만 km마다 갈던 엔진오일을 1만5000km, 2만 km를 타도 갈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의 윤활기유 실적을 보면 ‘불황의 그늘’이 생각보다 짙어 보입니다. 윤활기유는 기계설비나 자동차, 선박 등에 쓰이는 윤활유용 원료입니다.
에쓰오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윤활기유 사업 매출액은 1조7516억 원, 영업이익은 1556억 원입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22.3%, 52.9% 줄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실적을 2011년과 비교하면 하락폭(매출액 ―28.9%, 영업이익 ―78.3%)은 더 큽니다.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기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지난해 2조7907억 원어치를 팔아 1552억 원을 남겼습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3.8%가 줄었습니다. 영업이익은 반 토막이 났습니다. 국내 수요가 줄어들자 이 회사의 수출비중은 2010년 78.2%에서 지난해에는 86.3%까지 올라갔습니다.
정유사의 효자 사업 중 하나였던 윤활기유 사업 부진에 정유사들은 하나같이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재계에서는 정유사의 한숨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계설비 유지를 위해 쓰던 윤활유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면 공장 가동률이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올 상반기(1∼6월)에는 현대오일뱅크가 정유 4사 중 가장 늦게 윤활기유 공장을 준공합니다. 윤활기유 사업이 언제 다시 정유사들의 효자 자리를 꿰찰지 주목됩니다. 아마 그때가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육지에선 크고 작은 공장들이 쉼 없이 돌아가고, 바다에선 대형 화물선박이 바쁘게 돌아다닐 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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