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경제]현대제철 “철근값 먼저 정해야 제품 출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경기불황이 만든 이상한 관행 있었다는데…

김창덕 기자
김창덕 기자
현대제철이 11일 고객사들과의 원활한 철근 거래를 위해 ‘선(先) 가격 산정 후(後) 제품 출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보도 자료를 냈습니다. 당장 12일부터 가격을 먼저 정한 뒤 건설회사들에 철근을 납품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올해 1분기(1∼3월) 철근 가격을 t당 74만 원으로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공급물량도 이 가격으로 정산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죠.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물건 값을 먼저 정한 뒤 거래하는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현대제철은 왜 이런 얘길 새삼스럽게 꺼낸 걸까요?

그동안 경기 불황이 가장 기본적인 시장원리마저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대형 건설회사들이 조금씩 외상으로 철근을 사갔던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철강회사나 철근 유통회사들로서는 단골 고객의 요청을 냉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 출하 후 정산’은 점차 확산돼 2011년부터는 아예 업계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지난해 상반기(1∼6월)까지 철강회사, 유통회사, 건설회사는 돈독한 신뢰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철근을 납품한 뒤 한두 달 뒤에는 가격 합의가 이뤄져서 대금도 꼬박꼬박 입금됐습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철근(지름 10mm 고장력 제품 기준) 값이 2012년 3월 t당 84만 원에서 지난해 8월 72만 원까지 내려간 덕도 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문제가 생겼습니다. 철강회사들이 철 스크랩 가격 상승을 근거로 철근 가격을 올리려 하자 건설사들이 정산을 미루기 시작한 거죠. 현대제철 측은 “일부 고객사들은 물품대금 지급 보류, 세금계산서 수취 거부, 발주 중단 등 비정상적 거래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현대제철이 지금까지 건설사에서 받지 못한 돈은 약 500억 원입니다. 이 회사는 중간 유통회사를 통한 거래가 60%에 이르러 전체 미수금은 1000억 원이 넘습니다.

다른 철강회사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지난해 9월부터 건설사들로부터 철근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중소 유통회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시멘트회사들까지 각 건설회사에 올해 시멘트 값을 10% 안팎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불황은 참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고민을 남기고 있습니다.

김창덕·산업부 drake007@donga.com
#현대제철#철근값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