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채 100조 원에 육박하면서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지방 재정 건전성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지방 재정 건전성은 올해 지방선거의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Q.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지자체들이 파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지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 등으로 생긴 대규모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지자체 채무가 급격히 늘면서 중앙정부가 지자체 파산제도를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파산제도란 무엇인지, 지역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점점 나빠지는 지방 재정 건전성
2006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유바리(夕張) 시가 파산했을 때나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등 유럽 내 지자체의 재정위기가 대두됐을 때 국내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금융위기에도 버티던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 지난해 7월 파산 신청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국내 언론에는 연일 ‘지자체 무상보육예산 고갈’ ‘지방정부 세입(歲入) 부족’ ‘지방정부 디폴트 가능성’ 등 지자체의 재정 부족을 우려하는 기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국내 지자체의 채무는 2012년 말 기준 27조1252억 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약 4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지방공기업 부채까지 더하면 부채가 100조 원이 넘을 정도로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 1월 정부가 지자체 파산제도 도입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 지자체 파산…청산보다 재정 재건에 초점
아직까지 국내에는 지자체가 파산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지자체가 파산한다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자체 파산은 개인, 기업의 파산과 어떻게 다를까요.
일반적으로 파산은 경제주체가 만기가 된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법원이 채무자의 잔여재산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법적인 청산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 파산 개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자체 파산은 지자체가 자력으로 지방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통상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그러나 지자체는 지역주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 파산 절차와는 달리 청산보다 재정 재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지자체 파산은 중앙정부나 상급 자치단체가 개입해 문제 해결을 주도하기 때문에 자주적인 재정권 제한이나 상실이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1934년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도입한 뒤 크게 ‘지자체 신청형’과 ‘정부결정형(선고형)’으로 구분해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 시는 지난해 7월 서울시 연간 세입과 맞먹는 180억 달러(약 20조8000억 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했다. 디트로이트 시 곳곳에 폐허가 된 건물들이 방치돼 있다. 동아일보DB
○ 파산한 디트로이트, “버려진 섬”
그렇다면 지자체의 파산은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본과 미국 사례를 보면 지자체 파산의 영향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광산업으로 유명했던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 시는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과잉투자를 반복한 끝에 2006년 파산했습니다. 이후 4년 동안 공무원 수는 61% 줄었고 공무원 급여는 50% 이상 삭감됐습니다. 또 세금은 크게 늘었지만 공공서비스의 질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때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디트로이트 시는 지난해 7월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이후 실업률이 18%를 웃돌고 있으며 경찰 인력 감축 등으로 범죄율이 급증해 치안이 가장 불안한 도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 고장난 가로등조차 고치지 못할 정도로 공공서비스의 질이 급격히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가 디트로이트를 “버려진 섬”으로 묘사할 정도입니다. ○ 중장기 관점서 재정 대책 마련해야
지자체 파산제도가 도입되면 국내도 파산하는 지자체가 여러 곳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지자체가 파산하면 지역경제, 특히 지역 내 서민층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파산을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파산을 막는 게 가능할까요?
지자체가 재정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낮은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지역산업을 육성하고, 효율적인 재정지출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지방 재정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세제를 개편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복지재정의 분담과 향후 관리방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 재정 집행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방의회, 지역주민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외국의 지자체 파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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