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서초구 ‘The K서울호텔’에서 열린 ‘글로벌교통협력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연구성과 발표회. 왼쪽부터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 이용재 중앙대 교수, 김기혁 대한교통학회 회장, 김용석 국토교통부 교통정책조정과장, 한종만 한국시베리아학회 회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글로벌 어젠다로 거대 시장인 유라시아(유럽+아시아) 지역 국가 간 경제협력을 통해 교역을 확대하고 동시에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북한과의 긴장감을 낮출 수 있는 정책으로 장기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 대박론’의 첫걸음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외교 정책인 동시에 ‘남북통일의 준비’인 셈이다.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을 구체화하기 위해 남-북-러 3각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남-북-러가 도로와 철도, 전력망, 가스관, 송유관 관련 사업을 함께하는 것이다. 남-북-중, 남-북-러의 3각 협력을 통해 남북 연결 철도를 활용하고 북한의 철도를 개·보수해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부산에서 북한을 통과해 중국,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교통물류체계가 구축된다.
유라시아 신흥국들의 경제성장 잠재력은 높은 편이다.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몽골 등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 내외 수준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가량을 차지한다. 상당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지닌 거대 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효과적인 협력 인프라 구현을 위한 교통협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쪽의 교통, 물류 시스템이 상당히 낙후돼 있는 것이 문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을 위해선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경제협력이나 무역협력을 위해서는 물류체계가 확보돼야 하지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국제 수송이나 물류 효율성 면에서 하위 수준이다. 세계은행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물류효율지표(LPI)에서 몽골 140위, 우즈베키스탄 117위, 키르기스스탄 130위, 타지키스탄 136위 등으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통관, 물류시설, 국제수송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도 100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국교통연구원(원장 김경철)은 27일 서울 서초구 ‘The K서울호텔’에서 ‘글로벌 교통협력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주제로 2014년 연구성과발표회를 열고 한국이 글로벌 교통협력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 여형구 제2차관은 이날 행사에서 “자유무역의 확대로 기존 교통물류 정책이 더이상 국내 환경에만 머무를 수 없는 형국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유라시아 철도망 연결 등 글로벌 교통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발표회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현을 위한 글로벌 교통협력을 위해 8가지 과제를 제안했다. 먼저 한국이 유라시아 협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유라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가입돼 있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향후에 유럽-아시아 간 국제철도망을 이용할 때 국제적인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원은 “국제연합 개발계획(UNDP)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도 연계 협력해 유라시아 국가들의 교통시설 재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정부 간 협의체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간 운송 관련 법제도를 규격화할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국가들에 한국의 선진 교통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구원은 “교통 인프라 구축 지원을 통해 유라시아 국가들에 한국 경제 발전모델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한국이 유라시아 교통협력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연구원은 또 장기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의 교통협력 사업에 우리나라의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선 해당 국가들의 정책 동향이나 협력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정부가 해당 나라들에 대한 연구조사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북아 국가 간 경제·물류 협력을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러 3국 간 철도, 가스, 전력 사업을 통합 추진하는 등 함께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 이는 3국 간의 협력이 통일 준비를 위한 남북 교통협력의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이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위해선 남북 교통망을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에서 속초를 거쳐 나진,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동해선은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이어질 수 있는데, 남북 교통망의 현대화가 이뤄져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동해선이나 경의선은 연결 노선이 단절된 상태로 국내 시설도 개선해야 한다. 연구원은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하기 위해선 국내 시설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용재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발표회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추진은 무엇보다 유라시아 대륙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그들의 종교, 문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목표를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남북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기존에 금강산 사업이나 개성공단 확대는 남북경협 초기에 물꼬를 트기 위해 추진했던 평면적 사업이다. 새롭고 복잡하게 전개되는 동북아시아 상황에서 조금 더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을 끌어들여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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