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6세인 미야자키 마코토(宮崎實) 씨는 일본 도쿄의 빌딩관리회사 ‘다이와(大和) 라이프넥스트’에서 정규직처럼 일하고 있다. 인재개발부 교육지원과에 속한 그는 빌딩관리자들이 매뉴얼대로 일하는지 감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기계설비 제조업체에서 60세 정년을 맞은 뒤 자회사로 옮겨 3년 더 일하다가 이 회사에 재취업했다. 이 회사의 정년은 65세. 하지만 체력평가, 근무평가 등을 통과하면 80세까지 일할 수 있다. 임금은 근무시간에 따라 지급된다. 미야자키 씨 외에도 전체 직원 3700명 중 약 35%인 1300여 명이 65세 이상이다. 최고령 직원은 80세.
미야자키 씨는 “부부가 받는 한 달 연금 30만 엔(약 310만 원)은 아내가 생활비로 쓰고 나는 월급으로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긴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가나자와 야스노부(金澤泰伸) 총무부장은 “꼼꼼함이 필요한 관리 업무는 고령자에게 적합하다”며 “일할 능력이 되는데도 나이 때문에 외면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뒤 고령층을 적극적으로 일터로 이끌고 있는 일본의 현주소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한국도 저성장의 활로를 ‘일하는 노년층’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복지도 가능하고, 경기침체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는 얘기다.
○ 한국 고령층, 소득안정성 꼴찌
본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고령층의 소득안정성과 고용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60세 이상의 소득안정성(8.7)은 가장 낮은 반면에 65세 이상 고용률(30.1%)은 두 번째로 높았다. 일하는 노인이 상대적으로 많은데도 연금 수준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 노인빈곤율 등을 반영한 소득안정성은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빠른 고령화 속도에 비해 한국의 노후 보장 체계가 미흡한 데다 일하는 노인 대부분이 소득이 불안정한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에 대거 고용됐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근로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61.85%가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이다. OECD 평균은 19.53% 수준이다.
임시직 중에서도 국내 노인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공공근로 등 질이 낮은 일자리가 상당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65∼79세 취업자 직업은 단순노무(36.6%), 농림어업(34.4%) 순으로 많다.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월급 57만 원을 주는 임시직 아파트 관리사원을 모집한 결과 기업 임원 퇴직자를 포함해 85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린 것은 이런 실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노인 채용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 줘야
지난해 4월 ‘65세 정년’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60세가 지나면 최고점 대비 60% 정도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60대 현역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또 80% 이상의 기업은 60세가 된 직원을 일단 퇴직시킨 뒤 재고용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산토리홀딩스, 다이와하우스공업 등 일부 기업은 기존 임금을 그대로 주면서 정년을 늘렸다.
독일은 2029년까지 65세인 정년을 67세로 늘리기로 합의했으며 일자리를 찾는 중장년층이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11년 정년퇴직 연령 명시를 금지한 영국은 일하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기업의 고령자 채용을 독려하기 위해 ‘에이지 포지티브 캠페인’이라는 국가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앞서 진행된 이들 선진국처럼 한국도 일하고 싶은 노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경제 활력을 되찾는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고령자를 많이 채용한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년 후에도 제2, 제3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전직이나 재취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특히 은퇴를 앞둔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들이 전문성과 경력을 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 글 실은 순서
<1> 포스트 뉴 노멀 시대가 온다 <2> 선진국은 ‘3차 산업혁명’ 중 <3> 브레이크 걸린 신흥국, 기회는 있다 <4> ‘화이트칼라’에서 ‘레인보칼라’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