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에는 직원 가족들로 구성된 ‘하나 SOL’이 있다. 가장 밝고 명쾌한 소리인 음계 ‘솔’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고객 입장에서 은행 경영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한다. ‘이런 상품을 개발해 달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상품이 ‘나의 소원 적금’이다. 고객들이 적금에 가입할 때 집안 인테리어, 치아교정, 어학연수, 효도여행 같은 소원을 이루기 위한 목표 금액을 직접 설정하고, 은행은 목표를 달성한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이 적금은 은행의 스테디셀러가 됐다. 2월 말 기준 잔액은 1800억 원, 계좌는 8만8700개다. 하나은행은 하나 SOL을 확대해 직원 가족뿐 아니라 일반 고객까지 참여시키는 ‘하나 솔로몬’을 지난해 발족했다.
신한카드는 일찌감치 고객패널 제도를 도입해 11기째 운영 중이다. 고객패널은 신상품, 서비스 개발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히트를 친 상품도 꽤 만들었다. 고객이 원하는 카드 혜택을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맞춤형 카드로 2009년 큰 인기를 얻었던 ‘하이포인트카드 나노’와 카드 포인트를 은행 예·적금이나 펀드에 납입할 수 있는 ‘S-More’ 카드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개발 과정에 고객 의견을 적극 반영하거나 고객을 참여시켜 ‘대박’을 친 금융상품이 적지 않다. 고객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금융사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오마르 메를로 임피리얼 칼리지 경영대학원 교수 등 연구진이 글로벌 은행의 고객 3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행에 직접 제안과 피드백을 제공하는 고객들이 그렇지 않은 고객보다 좀 더 많은 금융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참여도가 낮은 고객들은 수익성이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충성도와 브랜드 애착도 낮았다고 밝혔다.
많은 경영자들이 고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고객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들의 의견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는 기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불필요한 잔소리’나 ‘불편한 민원’으로 여기며 고객 의견을 경계하거나 고객 참여를 꺼린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저금리, 저성장의 불리한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융상품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의 기회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회사를 잘 아는 고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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