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1조8000억 원대 대출사기에 현직 간부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동양그룹 사태에 이어 최근 사상 최악의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로 정치권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최수현 금감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달 18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최 원장은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한 수장이라는 오명을 쓰며 최대 위기에 처했다.
금감원이 직원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과 인적 쇄신에 나서지 않으면 바닥으로 떨어진 감독당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도 다시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 반복되는 직원 비리 연루…금감원 ‘쑥대밭’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감원 자본시장조사1국 김모 팀장이 KT ENS 대출사기 사건 주범들로부터 수억 원대 금품, 향응을 받고 조사 상황을 알려준 것이 밝혀진 뒤 금감원 내부는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다시 불거진 내부 비리로 쑥대밭이 됐다” “저축은행 사태 때의 악몽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등의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금융사의 탈선을 감시해야 할 금감원 직원이 오히려 금융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전현직 임직원 10여 명이 많게는 수억 원의 금품을 받고 저축은행 부실을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나 일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에는 한 간부가 상장사 부실 회계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이처럼 금감원 내부 직원 비리 연루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감독 혁신방안’을 통해 퇴직 후 금융사 감사 재취업 금지, 민간 전문가 충원, 감찰 조직 확대, 직원 청렴도 평가 강화 등의 대책을 쏟아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에는 저축은행 사태 이후 3년 만에 금감원 현직 국장이 시중은행 감사로 내정됐다가 ‘낙하산 감사’ 논란이 거세게 일어 이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전날 “관련자에게 징계, 면직 등 엄중 조치를 하고 유사 사례 발생 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후 약방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 “금감원장, 내부통제 실패”
무엇보다 그동안 금융사의 내부통제를 강조해온 최 원장이 정작 금감원의 내부통제에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높다. 최 원장은 취임 후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사들은 수익 창출에 치중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윤리를 회복하고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내부통제를 책임지는 경영진을 엄중 조치해 금융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카드정보 유출 직후인 1월 19일에도 “카드사 경영진은 금융당국의 제재가 있기 전 자진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내부통제와 관련해 금융사 경영진에 책임을 강조하던 최 원장이 왜 금감원의 비리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침묵하느냐”는 비판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오히려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 원장 취임 후 신규 개발된 ‘여신상시감시 시스템’을 활용해 KT ENS 불법 대출사기 사건을 적발했다. 일부 언론에서 금감원 직원 연루설이 보도되자 최 원장은 즉시 엄중한 내부 감찰을 지시했다”며 최 원장의 실적을 홍보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직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며 금감원의 내부감사 시스템과 임직원 윤리의식 등을 전면적으로 수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은행처럼 특수법인 형태인 금감원 조직 구조와 업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감원이 막강한 감독 권한을 독점하다 보니 금융사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과도 유착 관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금융감독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비리 혐의가 적발되면 중징계로 본보기를 보여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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