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 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내 연기금들이 잇달아 한국에 대한 투자비중 줄이기에 나섰다. 회원들에게 돌려줘야 할 수익률은 시중금리보다 높은데 한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로는 이를 맞출 수 없어 고위험 투자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경찰공제회는 당초 올해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기로 했던 신규 자금 150억 원에 대해 투자처를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공제회 관계자는 “이 자금은 해외투자 자금으로 편입되거나 국내에 투자하더라도 주식시장이 아닌 곳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군인공제회도 지난해 대비 올해 국내 주식시장 투자금 규모를 줄이고 해외 대체투자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지난해 신규 투자금의 주식투자 비중은 13%였지만 올해는 10%대로 낮췄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혀 기대했던 수익률을 내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에 해외 대체투자 비중을 높여 수익률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투자를 강화하는 건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도 마찬가지다. 교직원공제회는 최근 ‘해외투자부’를 신설하고 해외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8500억 원가량 늘리기로 했다. 그 대신 채권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국내투자 비중은 줄이기로 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도 국내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해외투자를 강화한다. 국민연금은 2012년 77.6%에서 지난해 75.7%로 낮아진 국내투자 비중을 올해는 74.2%까지 떨어뜨릴 계획이다.
연기금이 해외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회원들에게 지급하는 연간 수익률(급여율)이 금리보다 턱없이 높아 위험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지 않으면 적자가 심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교직원공제회의 급여율은 5.15%, 군인공제회는 5.4%, 경찰공제회는 5.3% 수준이다. 이규택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주식투자로는 5%의 수익률을 내기 힘든 상황이 됐고, 채권 금리는 2%대 후반이라 국내투자는 많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공제회 이사장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급여율 인하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회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들이 투자를 줄일 경우 국내 주식시장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투자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관투자가들이 국내투자를 줄일 경우 수급 불안 때문에 증시가 경색될 수 있고 외국인 자금의존도가 높아져 변동성도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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