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6월부터 외국인은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금액 제한 없이 상품을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개혁 ‘끝장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지적된 지 하루 만에 관련 부처가 해결책을 찾기로 한 것이다.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부처와 공무원에 책임을 묻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고에 관료들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은 21일 부처별로 맡고 있는 규제 리스트를 전체적으로 분석한 뒤 각 규제를 완전 철폐, 일부 완화, 현행 유지 등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토론회에서 지적됐던 공인인증서 및 액티브엑스 강제 사용규정과 관련해 이르면 6월부터 외국인은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30만 원 이상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내국인에 대해서도 인터넷 쇼핑몰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30만 원 이상 물건을 구입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기재부는 보건 의료 교육 관광 금융 등 유망 서비스업과 환경 노동 등 일반적인 기업 활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규제에 대해 완화 대상을 선별하기로 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규제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신제품 출시 전에 거쳐야 할 인증 절차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절차를 줄이는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이 토론회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인증제도에 대한 최신 정보를 올리고 민간에서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함에 따라 국가표준인증통합정보센터 홈페이지(www.standard.go.kr)를 대대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기업 유형과 제품에 따라 인증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기업들이 직접 인증제도 개선을 건의할 수 있는 코너도 만들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서 ‘규제부’로 불릴 정도로 규제가 많은 국토교통부는 ‘총점관리제’를 도입해 2017년까지 각종 규제를 3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총점관리제는 국토부 관련 전체 규제 2400여 건을 국민 부담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긴 뒤 이 점수를 줄여 나가는 방식이다. 규제건수에 연연하기보다 규제의 강도를 낮춰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게 목표다. 교육부는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 건립을 불허한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다음 달에 훈령을 개정해 해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회문화 관련 부처들은 개혁 대상 규제를 새롭게 발굴하기보다는 기존에 추진해온 규제개혁 과제에 속도를 내는 데 초점을 둘 예정이다.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자체적으로 선정한 23개 규제개혁 과제 해결에 나선다. △카지노에 투자하려는 외국인투자가에게 적용하는 신용등급 자격기준 완화 이슈 △종합의료시설의 부대시설로 관광호텔을 허용하는 문제 △영화관 스크린과 좌석 간 거리, 복도 폭에 관한 규제 완화 등이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외국인 학생들이 국내에 있는 외국계 대학에 어학연수를 올 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반기에 비자 관련 규정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날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은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실무급 당정청 회의를 열고 규제 개혁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경제부처에서 규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료는 “끝장토론회 직후 장관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며 “이전에는 정치권 때문에 규제완화가 안 된다고 했지만 이젠 이런 변명이 안 통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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