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 의류패션팀 사원인 김혜령 씨는 3년차 직장인이다. 김 씨는 최근 12일 동안 프랑스 독일 벨기에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은 “어떻게 휴가를 12일이나 몰아 쓸 수 있었느냐”며 부러워했다. 열흘이 넘는 여행은 안식주 제도 덕분에 가능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직원들이 하계(7일)와 동계(3일) 휴가 이외에 1년에 두 차례씩 5일 이상의 안식주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했다. 김 씨는 하계휴가와 안식주 휴가를 붙여 12일을 쉴 수 있었다.
안식주뿐만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퇴근시간에 임직원들의 PC가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같은 ‘가족친화 경영’은 유통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통업계는 원래 근무시간이 길고 주말에도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다른 업계보다 센 편이다.
○ 쉴 때 제대로 쉬어라
가족친화 경영의 이면에는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최상의 성과를 이끌어 내려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정 회장은 “조직문화 개선이 미래 성장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조직문화 1등 기업이 돼야 한다”는 말을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추구하는 조직은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회사다. 예전과 달리 가족과의 생활을 중시하는 임직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창의성과 활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제도의 특징은 한마디로 ‘쉴 때 제대로 쉬고 쓸데없는 노동력 낭비를 없애라’는 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다른 기업들의 가족친화경영 실패를 거울삼아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올해 1월 유통업계 최초로 도입한 ‘PC오프제’는 업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왔다. 현대백화점 본사에서는 오후 7시에, 각 백화점에서는 오후 8시 반에 PC가 자동으로 꺼진다. ‘쓸데없는 야근을 하지 말고 집에 가라’는 뜻이다.
또 현대백화점과 현대홈쇼핑은 올해 1월부터 안식월 휴가제 대상을 종전 부장에서 차장(파트장)까지로 확대했다. 안식월 휴가 대상자는 3, 4년에 한 번꼴로 한 달 동안 유급 연차휴가를 갈 수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주요 점포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중 집중근무제는 ‘집중적이며 더 나은 휴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토·일요일이나 일·월요일을 연달아 쉬게 하는 제도다. 주요 점포가 주말에 영업을 하는 특성상, 유통업체 직원들은 주중 하루와 주말 하루를 나눠 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하루씩 띄엄띄엄 쉬다 보니 가족들의 불만이 컸고 직원 본인들도 푹 쉬기가 힘들었다.
○ 조직문화 개선… 공격적 사업 확장의 밑바탕
현대백화점그룹은 조직 내부에서는 직원의 만족도를 높이는 소프트 전략을 채용했지만 외부적으론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최근 직원 만족도가 높아진 만큼 조직 경쟁력도 향상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아웃렛 사업 등 신규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올해 5월 서울 금천구 하이힐아울렛 위탁 운영을 시작하며, 9월에는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 매장을 일괄 임대해 아웃렛으로 바꿀 예정이다. 12월에는 경기 김포시에 프리미엄 아울렛 매장을 연다.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확장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은 중견 가전업체인 동양매직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홈쇼핑의 유통망을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 ‘정중동’ 행보를 보이던 정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며 “안으로는 조직원의 기를 살리고 밖에서는 공격적 영업에 힘을 내는 ‘내유외강’ 경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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