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규제폐지땐 면책제도 도입할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규제 권한 부처 움직이게 하려면

20일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 직전 정부부처들이 만든 규제 관련 검토의견서가 개혁 반대 논리로 채워진 것은 한국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정부 핵심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제 전문가들은 규제개혁에 따른 리스크를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속성을 감안할 때 연내 개혁의 고삐를 죄어 성과를 내지 않으면 끝장토론이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타성에 젖어 개혁 외면

공무원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기존 제도를 바꾸거나 없애는 변화로 부작용이 생기면 문책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기업인들은 담당 공무원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다. 20일 끝장토론 동영상에서 박종훈 목재재활용협회 과장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들고 담당 공무원을 설득하려 하지만 해당 공무원이 금방 자리를 옮겨 규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이 시간을 끌다가 자리를 옮기면 그뿐이라는 생각에 개혁 이슈와 관련해 변죽만 울리다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처들은 이런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전면적인 제도 개선은 꺼리고 있다. 한 부처는 “지금도 직원의 전문성 육성을 위해 일부 보직에서 전문보직 경로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업인들 생각처럼 한 사람을 몇 년씩 같은 자리에 둘 수는 없다”고 했다. 중앙부처 관료들이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 고위공무원이 되기 전에 요직을 두루 거치려 하기 때문이다. “부처 과장이 1, 2년에 한 번씩 바뀌어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는 기업인들의 애로를 풀어주기 힘든 구조다.

○ 민감한 사안은 무조건 보류

또 규제개혁이 힘든 것은 나쁜 규제라도 나름의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가 집중돼 있는 부처가 명분에 초점을 맞춰 개혁에 반대하는 논리를 만들면 이 논리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이륜차(오토바이)가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1972년 5월까지만 해도 250cc 이상 오토바이는 고속도로에도 진입할 수 있었지만 이후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오토바이의 통행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경남 창원은 이륜차 제조업체가 모여 있는 도시인데도 창원 시내로 들어가는 창원터널에서는 이륜차를 운행할 수 없다. 안전이라는 명분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워낙 공고해 규제의 실익을 검증해 보자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모두가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당장 규제를 풀지는 않더라도 서울 양재대로나 창원터널 등을 시범지역으로 정해 안전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인들은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가 약한 것에 대해 실망스러워하고 있다. 신종 수질개선 기계를 만드는 워터웨이의 김완주 부장은 “2010년 5월 새로 생긴 품질 규제 때문에 제품을 납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J&J컴퍼니 대표는 “과거 다른 회사가 영화 포스터에 주인공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넣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기준을 명확히 해야 개봉 직전 포스터를 고치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모호한 규정을 유권해석해서 기업활동을 장려했다면 나중에 감사 때 지적을 받아도 면책해주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규제개혁을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며 “전문가 집단이 규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무원과 공조토록 하면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 송충현 기자
#공무원#규제폐지#면책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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