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88조 원, 고객 2900만 명의 국내 ‘리딩 뱅크’ KB국민은행이 최근 각종 금융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직원 개개인의 일탈 행위로 넘기기엔 횟수가 너무 잦고 수법도 다양해졌다는 게 문제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사고(事故)은행’으로 전락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이 은행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 비리·부정 수법 갈수록 대담해져
최근 약 1년간 국민은행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각종 금융사고들은 모두 10여 건에 이른다. 상당수가 지난해 7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이건호 행장 체제의 출범 이후 집중적으로 불거졌지만 불법행위 자체는 대개 그 이전부터 진행돼 왔다는 특징이 있다. 국민은행의 문제는 오랫동안 곪았던 조직 내의 상처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내·외부 인사들의 분석이다.
작은 점포가 많은 소매금융회사는 금융사고 규모도 비교적 소액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은행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의 규모는 100억 원이 넘었고,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역시 액수가 4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 팀장급 직원이 부동산개발업자에게 건넸다가 적발된 위조 서류도 단위가 1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행 등 KB금융지주 계열사들은 신용카드 정보유출, KT ENS 협력업체의 사기대출 등 올 들어 터진 금융권의 굵직한 사건사고에 단골처럼 이름을 올렸다.
사고가 잇따르자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회장, 행장이 직접 나서 인사 개혁안을 발표하고 임직원결의대회를 여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새해 들어서도 악재가 계속되면서 일시적인 기강해이 차원을 넘어 조직이나 시스템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감독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당초 올 하반기에 잡혀 있던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2분기(4∼6월)로 앞당겨 시행키로 했다.
○ 낙하산 인사·파벌주의의 누적된 병폐 표출
국민은행은 지배구조의 특수성 때문에 대다수의 공공기관들과 유사한 문제를 갖고 있다. 국민연금(9.96%)이 최대주주를 차지하고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는 등 지주사의 오너십이 분명치 않아 은행의 경영 전반이 정권의 입김에 휘둘리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반복된 낙하산 인사로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떨어져 있고,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의 파벌 싸움이 합병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국민은행의 한 중간간부 직원은 “간부나 임원급으로 올라갈수록 인사철만 되면 국민 출신, 주택 출신을 따지는 문화가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능력보다 연줄 등에 좌우되는 조직문화 속에서 사내(社內)정치와 한탕주의가 횡행하고 금융사고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보다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유난히 심하다는 점도 문제다. 2008년 지주사 출범 때는 황영기 회장과 강정원 행장 간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두 사람 모두의 불명예 퇴진으로 이어졌다. 전임 어윤대 회장은 물론이고 현재의 임 회장도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낙하산 논란이 있을 때마다 노조와 대립, 타협하는 과정에서 기강이 해이해지고 내부 통제시스템이 허술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하나, 신한은행과 달리 CEO가 자주 교체되다 보니 자기 임기 중에만 ‘반짝’ 하면 된다는 단기 실적주의에 집착할 수 있다는 점도 각종 비리에 대한 불감증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민은행에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데는 서민 금융기관 특유의 조직문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대규모 여신을 만져본 경험이 별로 없는 직원이 많아 사고에 무감각한 면이 있다”고 봤다.
비리와 일탈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과잉대응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매금융 전담 은행인 데다 지점이나 직원 수도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사고가 빈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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