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거래량 79% 뚝…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5일 03시 00분


한국거래소 물량 1위→9위 추락

50대 직장인 이모 씨는 3년 전 여윳돈 약 1억 원을 가지고 코스피200 옵션거래에 뛰어들었다가 지난해 말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처음 투자했을 때는 1년 반 만에 6배 가까이 벌었지만 한 번 손실이 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 씨는 “이제 파생상품 시장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이렇게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커지면서 한때 파생상품 거래규모에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파생상품 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국내 파생상품 거래량은 2011년 39억3000만 건에서 지난해 8억2000만 건으로 79.1%나 줄었고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파생상품 거래량에서 세계 9위로 떨어졌다.

○ 개인투자자 “위험이 높으면 고수익도 싫어”

한국에서 파생상품 거래규모가 급감한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의 대표 격인 코스피200 옵션시장에서 개인의 거래량은 2년 만에 85%가 줄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LIG그룹, 동양그룹 사태를 겪으면서 회사채로 큰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금융투자상품 투자 때 ‘원금은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투자성향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코스피200 옵션은 거래액의 10.5%의 증거금을 내면 거래할 수 있다. 고수익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거래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금융당국은 파생상품의 경우 일반 증권거래와 달리 개인투자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 2012년 코스피200 옵션의 최소 거래액 단위를 지수 1포인트당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올렸다. 파생상품 시장이 줄어드는 동안 은행예금 등 안전자산의 규모는 급증했다. 은행의 요구불예금(예금자가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예금) 규모는 2011년 14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20조2000억 원으로 늘었다.

○ 기관투자가들 “세금 규제 풀어 달라”

기관투자가의 거래량은 더 줄었다. 최근 2년간 코스피200 선물 거래에서 기관은 61% 줄었다. 기관들의 파생상품 거래는 주식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차익을 남기는 ‘차익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차익거래를 위해 주식을 팔 때 면제되던 증권거래세(매도금액의 0.3%)가 2010년부터 차익거래에도 부과되면서 기관들은 수익을 남기기 어려워졌다. 정현철 한국투자신탁운용 퀀트운용팀장은 “최근 수년간 증시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선물과 현물 간 가격 차가 0.3%를 넘지 못해 세금을 내고 나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파생상품 시장의 위축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파생상품 시장은 기관이나 외국인이 증시투자의 위험을 회피(헤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파생상품 시장이 활기를 잃으면 증시까지 침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금융당국이 파생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치현 한국거래소 주식파생운영팀장은 “최소 거래금액 단위를 10분의 1가량으로 줄인 ‘미니선물’ 등을 운영해 소액으로 투자하면서 손실은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파생상품#개인투자자#기관투자자#세금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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