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CEO]“글로벌 경쟁의 생존무기는 기술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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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와이티에스 황순철 이사

“젊은 시절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저에게 꿈은 기술이었고 그 기술이 저를 성장시킨 원동력이자 최고의 자산입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올해 4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와이티에스 황순철(53) 이사는 1981년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기계제도분야 금상 수상 이후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온 기계 설계 전문가이다. 금형 설계에서 시작해 제품 설계 전문가로 끊임없는 자기발전의 기회를 만들어 왔고, 지금은 평판디스플레이 장비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기술 명장이다.

경남 고성 태생인 황 이사의 삶은 ‘좌절을 딛고 꿈을 일궈온 오뚜기 인생’으로 요약된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네 차례나 전학을 다닐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인천에 거주하던 중학교 3학년 때는 프로권투 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월 훈련비 3000원을 낼 수 없어 포기했다. 좌절한 그에게 찾아온 황금 같은 기회는 ‘인천기계공고’의 설립이었다.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인천기계공고 1기로 입학한 그는 기능대회 입상을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기회는 첫 번째 직장인 ㈜금성통신 입사. 우여곡절 끝에 금성통신 소속으로 국제기능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금성통신은 독일의 지멘스와 합자회사로 금형분야에서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황 이사는 이곳에서 금형 설계의 기초부터 최고 수준의 기술을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힐 때마다 전문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는 고심 끝에 금성통신을 퇴사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대학 졸업 후 린나이코리아에 입사해 프레스 금형설계 전문 기술을 익힌 그는 ‘중앙설계사무소’를 창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익힌 금형과 가공법을 기반으로 직접 제품설계에 뛰어 들었고, 그 첫 작품이 지금도 볼 수 있는 지하철 역 안의 사각형 시계들이다.

2005년, 그의 꿈이었던 설계사무소를 정리하고 지금의 와이티에스로 자리를 옮긴다. 금성통신 입사동기였던 와이티에스 남성국 대표의 끈질긴 제안 때문이었다. 와이티에스는 LCD 장비 가운데 세정기, 타이틀러, 노광기, 드럼폴 부착기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2014년 현재 해외 매출이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회사로 도약했는데 황 이사의 설계기술이 단단히 한몫했다.

와이티에스에서 그는 3차원(3D)로 레이저리페어기를 처음 설계했다. 노광램프하우스를 3D로 설계하면서 최소의 사이즈로 설계한 덕분에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레이저 광학시스템의 배치를 3D로 하면서 지금까지도 와이티에스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술에서 1등을 하겠다는 것이 경영진의 의지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해나가는 힘은 기술력 외에 없으니까요.” 와이티에스는 올해 창립 23주년을 맞았다. 100여 명의 구성원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황 이사가 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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