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새 트럭 연비? 쉿!”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4일 03시 00분


강유현 기자
강유현 기자
“이번 신차는 연료소비효율(연비)이 많이 향상됐습니다. 그렇지만 연비를 밝힐 순 없습니다. 타보면 알 겁니다.”

12일 열린 볼보트럭코리아 신차 발표회에서 김영재 사장은 ‘FH’, ‘FM’, ‘FMX’ 완전변경 모델의 연비가 우수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기자가 연비가 얼마인지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대형트럭은 공인 연비가 없다. 싣고 다니는 화물 중량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스웨덴 본사에 내부 수치가 있지만 밝힐 순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지난해부터 자동차업체들이 대형트럭을 내놨을 때 배포한 보도자료 5개를 열어봤다. ‘연비 최대 7% 향상’(현대자동차), ‘연비효율만을 위한 변화’(스카니아코리아), ‘연료 효율성이 가장 뛰어나다’(나비스타) 등 다들 연비를 강조하는데 수치를 공개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국내 트럭 시장에서 개인 고객 비중은 85%로 추정된다. 장거리 운송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개인사업자들에게 연비는 수익과 직결된다. 대형트럭 운전자 중 한 달에 유류비만 500만 원 이상 지출하는 사람도 많다. 연비가 10%만 좋아져도 월 50만 원을 절약하는 셈이다.

업체들이 구체적인 연비를 밝히지 않는 ‘깜깜이 마케팅’을 하는 이유는 국내를 포함해 미국, 유럽연합(EU) 등에도 표준화된 공인 연비 측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서 3.5t 초과 중대형 화물차에 대해 시속 60km로 500m 구간을 5회 왕복한 뒤 최댓값과 최솟값을 뺀 3개 값의 평균치를 연비로 치긴 한다. 그러나 이 연비는 업체들이 국토부에 신고한 자체 시험 수치에 대한 사후 검증용일 뿐이다.

연비 인증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상용차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어서 각 차량에 맞는 검사 방법을 일일이 개발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대형트럭 연비가 L당 2∼4km다 보니 공개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개인 운송사업자들은 대부분 서민이다. 이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변하기를 기대해 본다.

강유현·산업부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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