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에서 육우(肉牛)를 10년째 키우는 박모 씨(42)는 최근 사료회사에 재산을 차압당했다. 젖소가 낳은 수송아지는 낙농가에서 키우지 않는다. 통상 육우농가에 판다. 박 씨는 이런 수송아지를 들여와 키우는 사업을 했다.
하지만 최근 매년 육우 소비가 줄어들면서 손해가 점점 커졌다. 외상으로 받은 사료 값도 물어내지 못했다. 그는 “육우를 키울수록 손해”라며 “주변에 억대의 빚을 진 육우농가가 수두룩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우 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육우의 가격은 폭락해 농가가 시름을 앓고 있다. 육우 송아지는 최근 마리당 가격이 1만 원대로 폭락했다.
14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육우 수송아지(초유떼기·7∼10일령) 시세는 2013년 평균 1만9000원으로 전년(4만8000원)의 40%로 폭락했다. 2003년만 해도 52만 원에 이르렀던 육우 송아지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이 유달리 한우를 선호하는 데다 값이 싼 미국산·호주산 쇠고기 수입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2008년 쇠고기 시장의 본격 개방으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강화된데다 ‘육우=질 낮은 고기’라는 인식이 퍼진 영향이 컸다. 농협 관계자는 “기존에는 육우는 한우와 함께 ‘국내산’으로 표기됐지만 원산지 표시제 강화로 육우와 한우, 수입육 등으로 구분되면서 육우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소비자 811명을 대상으로 쇠고기(구이용)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1순위는 단연 한우(59.8%)였고 육우(18.5%)는 수입육(21.7%)에 뒤처졌다. 육우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보니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아예 육우를 팔지 않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소비자에게 육우를 사지 않는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육우가 판매되는 걸 본 적이 없다’(47.7%), ‘육우는 질이 안 좋은 고기일 것 같다’(32.4%) 등의 답변이 적지 않았다.
육우농가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육우 한 마리를 기르는 데 사료비 등 총 399만4793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반면 육우농가의 육우 출하 가격은 230만∼260만 원에 그친다. 육우 한 마리당 약 140만∼170만 원꼴로 손해가 난다. 젖소를 키우는 목장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 목장주는 “수송아지가 태어나면 굶겨 죽이거나 땅에 파묻는 목장주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육우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낙농업 유지를 위해서도 육우 소비 활성화는 필요하다. 조석진 육우자조금대의원회 의장은 “낙농산업을 유지하려면 육우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육우 소비를 촉진하면 한우 쏠림 현상을 개선해 궁극적으로 한우 가격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1등급 육우가 1등급 한우보다 맛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노민호 서울우유유통 대표이사는 “육우의 사육기간은 20개월로 한우(30개월 이상)보다 짧기 때문에 육질이 연하고 마블링이 잘 형성된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우유는 지난해부터 육우전문점인 ‘열려라참깨’를 계열사로 운영하고, 농협은 육우 전문식당인 ‘미소와 돈’을 지난해 33곳에서 올해 45곳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육우 판로를 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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