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고현진 씨(30)의 가계부에는 얼마 전부터 지출 항목이 크게 줄었다. 지난달 말 양가가 모두 모이는 가족 행사가 있었지만 예약해둔 식당을 취소하고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때가 이러니 그냥 집에서 간소히 하자”는 가족들 권유 때문이었다. 동창회 등 사교모임도 연이어 취소됐다. 의류 쇼핑이나 미용실 등에서 쓰던 돈도 줄었다.
세월호 침몰 사태 직후 약 2주간 전반적인 국내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는 사실이 신용카드 사용 통계로 확인됐다. 특히 여행 쇼핑 외식 등 필수 소비품목과 거리가 먼 업종에서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
20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승인금액은 47조1600억 원으로 지난해 4월(44조8300억 원)에 비해 5.2% 증가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5월 황금연휴에 앞서 4월 말 여행·숙박대금 결제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기치 못한 세월호 참사가 터지며 카드 사용금액이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레저 명품 의류 등 이른바 즐기고 꾸미는 데 쓴 돈이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콘도 등 레저타운 업종의 카드승인금액은 지난달 상반월(4월 1∼15일) 전년동기 대비 27.5% 급증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인 하반월(4월 16∼30일)에는 거꾸로 31.0% 급감했다. 골프장도 상반월 카드승인금액 증가율이 17.2%였던 데 비해 하반월에는 ―2.4%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기성복 유아아동복 등 의류업종도 상반월(5.4%)과 하반월(―4.3%)의 증가율 격차가 컸다. 화장품과 미용실 등 미용업종의 증가율 역시 같은 기간 8.1%에서 0.6%로 크게 떨어졌다.
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상반월에 39.5% 감소했던 보험업종의 카드승인금액이 하반월에는 3.5% 증가세로 반전됐다. 교통부문의 카드사용은 항공사와 철도 고속버스 택시 등이 모두 하반월에도 증가세를 보였지만 세월호 사태와 관련이 있는 여객선 업종만 홀로 감소세(―29.9%)를 보였다. 유통부문에선 백화점의 매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지만 필수재 소비가 많은 슈퍼마켓은 세월호 사태 이후에도 카드사용액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각종 사고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의 애도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여행·레저업계의 타격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두투어 측은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 5월 초까지 고객이 전년보다 10% 이상 줄었고 특히 국내 여행은 취소 인원이 전체 예약의 40%에 이른다”며 “완만하게 회복되는 추세지만 다음 달까지 큰 반등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업계 한 관계자는 “대목인 가정의 달을 맞아 준비했던 마케팅 활동이 중지된 데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돼 판매 부진이 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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