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회장이 이끄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지난해에 ING생명을 1조8400억 원에 인수했다. 작년에 국내에서 진행된 인수합병(M&A) 중 5번째 규모였다. 하지만 상위 1∼4위 M&A가 모두 같은 그룹 내 계열사, 관계사 간의 M&A여서 인수의향서를 접수받아 우선 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의 ‘경쟁 M&A’ 시장에서는 가장 큰 거래였다.
사모펀드가 국내 M&A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이 주축을 이루던 M&A 시장에서 사모펀드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25일 글로벌 M&A 전문 분석업체인 머저마켓(Mergermarket)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있었던 M&A의 총규모(경영권 인수 기준)는 약 330억 달러(약 343조2000억 원)였다. 이 중 사모펀드가 주체가 된 경우가 전체의 23.5%인 77억 달러(약 8조80억 원)나 됐다. 또 올해 1분기(1∼3월)에는 국내 M&A의 11.7%를 사모펀드가 했다. 특히 역사가 갈지 않은 한국계 독립 사모펀드들이 이 거래의 대부분을 성사시켰다. ○ 한국계 사모펀드 활약 커졌다
ING생명 인수전에서 MBK파트너스는 미국계인 시티벤처(CVC)캐피털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인수에 성공했다. 미국계 거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에서 일했던 김 회장의 노하우가 발휘된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작년에 아웃도어업체 네파(9400억 원) 인수에도 성공했다.
소비재 기업 인수전에 사모펀드가 뛰어드는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매물로 나왔던 버거킹(보고펀드), 할리스커피(IMM프라이비에쿼티), 커피빈(미래에셋파트너스 6호) 등이 각각 한국계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동양매직 인수전에 뛰어들어 NH농협과 손잡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글랜우드투자자문도 한국계 사모펀드다.
ING생명과 함께 한국 자본시장 내 ‘빅딜’로 불렸던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NH농협금융지주에 근소한 차로 패한 파인스트리트도 한국계 사모펀드 중 하나다. 이 사모펀드는 최근 현대증권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경기 불황으로 M&A 시장에 나오는 기업 매물이 늘어남에 따라 사모펀드의 활동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다고 분석한다. 특히 은행 금리가 연 2%대로 낮아지고, 자본시장 투자수익률이 연 5%를 넘기기 어려워지자 국내 연기금들이 사모펀드 시장에 눈을 돌린 게 큰 영향을 미쳤다.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할 때에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대형 연기금이 수백억 원씩 투자했다. ○ 금융회사 M&A에 사모펀드 활약 두드러질 것
머저마켓은 최근 발간한 한국 M&A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사모펀드들이 금융사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며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M&A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인 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사모펀드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사모펀드에 자산의 50%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공모재간접펀드’ 제도 도입을 금융당국이 검토하는 것도 사모펀드에는 좋은 소식이다.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연기금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한국에서는 보수적 투자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은 작은 손실에도 민감한 경우가 많아 이들이 최대 투자자로 있는 사모펀드 투자는 고수익을 위해 위험을 적극적으로 떠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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