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서 배우는 소통경영]
기업에서 토론이 잘 안되는건… CEO가 言路를 독점하기 때문
리더가 말하고 싶은 유혹 참아야… 직원들이 아이디어 낼 수 있어
《 조선의 성군(聖君) 세종(재위 1418∼1450)은 국정운영에 토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임금과 신하들이 책을 읽고 국정운영을 논하는 경연(經筵)에 1900여 번이나 참석했다. 월평균 6회 정도다. 세종은 ‘토론을 즐긴 군주’로 불렸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뒤 신하들과의 첫 대면에서 “좌의정, 우의정과 이조, 병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의논해 벼슬을 제수하겠다”고 말했다. 임금이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신하들과 의논해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
세종 7년 12월 8일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곤궁한 처지에 빠지자 세종은 “허물은 실로 과인(寡人)에게 있으니 재앙이 올 징조가 아닌지 두렵다”며 신하들에게 간언(諫言)을 청했다. 간언은 매서운 비판과 질책을 뜻한다. 세종은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신하들에게 의견을 모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세종시대의 신하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했다. 세종 1년 1월 11일 편전에서 세종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한 뒤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질 때다. 명나라 황제를 만나고 돌아온 노대신 김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전하께서 국정을 운영하려면 명나라 황제의 법도를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전하면서 젊은 임금을 가르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도 말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조판서 허조는 “명나라의 법은 본받을 것도 있지만 본받지 못할 것도 있다”라며 반박했다. 이에 김점은 허조의 말을 다시 맞받아쳤다. 그는 “명나라의 황제가 직접 죄수를 끌어내서 자세하게 심문하는 것을 봤다”며 세종도 본받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조는 “그렇지 않다. 해당 업무를 맡아보는 관청을 두는 이유는 각각의 직무를 분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임금이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허조와 김점은 이날 임금 앞에서 토론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이들이 논쟁한 주제는 임금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관한 내용이다. 주제 자체가 임금에게 매우 불경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은 자신의 정치 스타일을 신하들이 논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은 토론에 개입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 토론의 승자로는 허조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사관은 “김점은 발언할 적마다 지루하고 번거로우며 노기를 얼굴에 띠었는데, 허조는 서서히 반박하되 낯빛이 화평하고 말이 간략했다. 임금은 허조를 옳게 여기고 김점을 그르게 여겼다”고 적었다.
세종은 두 신하가 ‘왕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논쟁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함구했다. 말하고 싶은 유혹을 매우 잘 참았다.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사람일수록 말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리더들은 대체로 자신의 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토론에서는 말을 참는 것이 매우 어렵다. 기업에서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최고경영자(CEO)가 언로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CEO는 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가려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주로 CEO는 마이크를 독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직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 또 몇 번 정도 의견을 냈다가 무참하게 깨진 경험을 가졌다면 아예 입을 닫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어떤 의견이든 제시하게 했다. 임금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관련된 김점과 허조의 논쟁은 신하들이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임금에게 대놓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도 세종은 무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런 세종의 ‘다사리 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다사리는 ‘다 사뢰게 하고 그렇게 해서 다 살게 한다’는 뜻으로 독립운동가 안재홍 선생이 한 말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다사리를 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창의적인 토론 분위기를 유도했다. 기업에서 수평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토론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토론을 제대로 진행하는 조직은 많지 않다. 무엇 때문일까. 신하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게 만들고 묵묵히 끝까지 들어주는 세종과 같은 리더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세종의 다사리 정신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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