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동아국제금융포럼]
금융 패러다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새로운 금융자본주의론 설파… 쏟아진 금융해법 아이디어
“미래의 금융은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저소득층에 장기적으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금융 자문기관이 필요하다.”(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은 아직도 금융 서비스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정책이 시급하다.”(가와이 마사히로·河合正弘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28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종합편성TV 채널A 공동 주최로 열린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한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자본주의가 필요해졌으며 금융의 역할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금융 분야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혁신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 “야성적 충동이 금융시장을 지배”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실러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세계 경제사에서 나타난 다양한 금융위기의 원인을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적 요인에서 찾았다. 그는 “이성적이지 않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때로는 현실과 단절돼 거품과 투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실러 교수는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이 시장 왜곡을 초래한다는 이론을 주창해 명성을 얻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1929년 대공황 등 반복된 위기는 결국 근거가 희박한 낙관론, 혹은 위기 이후 나타나는 극단적인 우울감이 빚어낸 결과라는 게 실러 교수의 진단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주식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코스피가 1,000 선을 돌파한 것이나 집값 상승률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지속적으로 앞선 현상도 경제적 거품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실러 교수는 비이성적 심리에 따른 시장의 거품을 막기 위해 더욱 정밀한 규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주가나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현 상황이 거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결국 해법은 제대로 된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양심적인 금융사를 감시하고 이들이 금융 약자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발간한 저서 ‘새로운 금융시대(원제 Finance and the good society)’에서 금융에 인간적 면모를 가미해 새로운 금융자본주의를 구현하자는 주장을 펴 금융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러 교수는 이날 포럼에서 “앞으로의 금융이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 ‘인간적 금융’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율적이면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인간의 속성이 금융에 담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저소득층에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과 이를 수행하는 비영리 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집값이 폭락하기 전에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관리하고 소득 불평등 수준과 연동해 부유층의 소득세를 높이는 세제 개혁 등의 정책 대안도 제시했다.
○ “금융혁신이 좋은 사회에 기여할 것”
이날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금융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글로벌 토론의 참석자들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금융의 역할에 대한 실러 교수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날 토론에는 실러 교수와 가와이 교수, 류징(劉勁) 중국 청쿵경영대학원(CKGSB) 부총장,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고 금융사가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면 금융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와이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상당수 인구가 은행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영세업자가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접근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정책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실러 교수는 주택가격지수 개발을 위해 자신이 창업한 회사조차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한 사례를 소개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소액 투자자 보호 문제에 대한 열띤 토론도 진행됐다. 류 부총장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뒷받침되고 성장의 과실이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돈을 벌면 다른 사람은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될 경우 경제적 약자인 빈곤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금융권에 닥친 가장 중요한 과제로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꼽았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결과적으로 불완전 판매를 양산해 소비자와 금융사 모두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여러 금융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자 중심의 혁신이 필요하다”며 “소비자를 은행 수익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파트너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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