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이대로 시행되면 산업계는 앞으로 3년간 최대 28조5000억 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해 해외 기업과 경쟁할 수 없게 됩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계획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와 철강협회 등 18개 주요 업종별 단체가 1일 공동성명을 통해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 산업계 “정부 할당량 현실성 없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사업자별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을 할당해 온실가스를 줄여나가자는 정책이다. 각 사업자는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27일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업종별 배출권 할당량을 발표했다.
산업계는 정부의 배출 할당량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가 이번에 발표한 배출권 할당계획안은 2009년에 나온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를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실제 배출량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2012년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은 7억190만 t으로 당초 정부 전망치(6억7400만 t)보다 4.1%(2790만 t) 많았다. 업계가 1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량을 추정해본 결과 이번에 정부가 할당한 양보다 2억8459만 t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할당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을 구입하거나 과징금을 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2010년 평균 거래가격인 1t당 2만1000원을 적용하면 3년간 배출권을 사기 위해 드는 전체 금액은 5조9762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모든 산업 분야에서 실제 배출량이 정부의 할당량보다 많기 때문에 배출권을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과징금을 내야 하는데 1t당 10만 원을 적용하면 산업계는 3년간 28조4590억 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기업들이 구입해 사용하는 전기와 스팀에 대한 ‘간접배출’도 거래제 적용 대상으로 삼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미 발전사들이 전기 생산 과정에서 배출권 할당제를 적용받는데 전기를 기업이 구입할 때 다시 배출권을 적용하는 것은 이중 규제라는 것이다.
현재 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EU 국가와 뉴질랜드 등 38개국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1.8%를 배출하는 한국이 거래제를 시행한다고 얼마나 기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철강·디스플레이 업종 타격 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국내 주요 산업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 업종에서 정부 할당량과 기업의 배출량 추정치의 차이는 4029만 t이다. 이를 과징금으로 환산하면 4조291억 원에 이른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1차 계획기간 배출량을 5210만 t으로 예상했는데 정부 할당량은 2595만 t이다. 한국디스플레이협회 관계자는 “2009년 환경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할당치를 계산할 때에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신규 투자가 늘어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설비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며 “그러나 2010년 이후 업황이 좋지 않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정부는 2009년 산정한 데이터로 배출량을 할당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배출량 거래제가 결국 산업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과 공장을 해외로 내쫓고, 전기요금 및 제품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 부담을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까지도 타격이 우려된다. 배출권거래제 대상기업은 최근 3년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5000t 이상인 업체다. 2010년 기준 470개 업체가 해당되는데 이 중 28%인 130개 업체가 중소·중견기업이다.
환경부는 기업들이 고효율 감축기술을 도입하면서 관련 산업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체에 배출권이 이미 충분히 할당됐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2일 공청회를 연 뒤 7월 말까지 할당 대상업체를 지정하고 10월에는 개별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을 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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