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에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사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실러 교수가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열린 동아국제금융포럼의 기조연설과 토론을 통해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금융의 새로운 역할을 역설한 이후 국내 금융권에 ‘실러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잇단 금융사고로 인한 신뢰 저하, 저금리·저성장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위기 상황에 놓인 금융사들은 미래 금융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 실러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4년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실러 교수의 기조연설문을 구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실러 교수의 메시지는 현재 국내 금융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런 강연은 직원들이 수시로 찾아 들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포럼 당일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실러 교수의 기조연설을 끝까지 들었다. 권 행장은 올 2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실러 교수의 저서인 ‘새로운 금융시대(Finance and the Good Society)’의 내용을 인용하며 영어 단어 ‘finance(금융)’의 어원이 ‘목표’를 뜻하는 라틴어 ‘finis’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제는 금융이 은행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업의 성공이나 내 집 마련과 같은 고객의 목표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도 평소 이 대목을 지인들에게 자주 언급하면서 “금융의 본질이 고객이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한금융그룹의 모토인 ‘따뜻한 금융’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설명한다.
일부 금융사는 ‘금융의 인간화’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결합’을 주장한 실러 교수의 이론을 경영 전략과 금융 신상품 개발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실러 교수가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금융 자문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서민금융 전문 재무상담사를 양성해 일선 금융현장에 공급하는 ‘희망금융플라자’ 사업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실러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새로운 금융시대’ 한국어판에 추천사를 쓴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오래전부터 실러 교수의 팬으로, 책이 출간되자마자 직원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했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은 박 회장의 지시로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도록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사내 인트라넷에 올리기도 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60주년 창립기념 행사에 실러 교수를 초대하려 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다”며 “이번 동아국제금융포럼을 계기로 다시 실러 교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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