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앞으로 계속 업계 2등(그룹)으로 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제일 큰 식당, 제일 큰 호텔, 제일 큰 옷집, 제일 큰 유원지, 제일 넓은 사무실은 우리 2등들이 재미없어 하는 것들”, “(반면) 로맨틱한 식당, 편안한 호텔, 센스 있는 옷집, 생각 깊은 유원지, 내 일에 맞는 사무실은 우리 2등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정 사장은 “우린 언제까지나 2등만 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덩치만 불려 무리하게 1등을 하느니 착실히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이겠지만 그래도 기업 경영자가 만년 2등에 만족하겠다니 어째 좀 의아하긴 합니다.
사실 정 사장의 이번 발언은 자산이나 순이익 면에서 압도적 1위인 신한카드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신한카드의 위성호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포인트 적립과 캐시백으로 혜택을 이분화한 현대카드의 ‘챕터2’ 전략에 대한 질문을 받고 “2등이라 가능한 전략”이라며 신한카드와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정 사장의 포스팅에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신한카드가 현대카드를 2등이라고 디스(폄하)한 것 때문에 위트 있게 글 남기신 것 같네요”라고 답글을 달자 정 사장은 “얼떨결에 공인 2등이 된 이상 각오라도 밝혀야죠”라고 응수했습니다. 위 사장의 ‘2등 발언’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걸 사실상 인정한 셈입니다.
덩치의 차이를 떠나 카드업계에서 두 회사가 라이벌 관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신한카드는 가장 많은 고객 수를 이용해 ‘빅데이터 경영’을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 현대카드는 “우린 고객의 행복과 거리가 먼 시장점유율 경쟁을 중단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습니다. 각자의 강점을 영업전략으로 잘 승화시킨 케이스죠.
‘제3자’인 삼성카드의 원기찬 사장도 최근 “점유율은 신한카드가 높고 브랜드 역량은 현대카드가 강하다”며 두 회사의 뚜렷한 개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감정적으로 싸운다기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각자가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표현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전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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