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주변에 밝혔을 때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도 집만 한 투자수단은 없다”며 부모님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반면 “집은 거주수단일 뿐이다. 집 사려고 빚을 깔고 앉는 건 비합리적”이란 내 주장을 귀 따갑게 들었던 후배는 “선배는 그저 ‘팔랑귀’였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부인할 수 없었다. 증권업계를 출입하며 ‘이젠 펀드투자의 시대’라는 ‘설(說)’을 오랫동안 풀었지만 최근 부동산 데스크까지 맡고 나서 ‘부동산 투자도 할 만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게 사실이니까.
다른 지인은 말렸다. “지금이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난 후가 집 살 타이밍”이라는 지적이었다. 미국 금리인상과 내 집 마련 사이. 수억 광년 떨어진 것 같은 두 사건의 거리는 의외로 가까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시중에 4조 달러(약 4383조 원)가 넘는 돈을 풀었다. 2007년 기준금리가 5%대였던 미국은 2008년 말 이후 0%대의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미국이 최근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며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 금리도 덩달아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미국보다는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이자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에 투자하려는 글로벌 자금의 일부를 신흥국인 한국에 묶어두기 위해서다. 한국의 금리가 올라가면 최대 100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의 금융부담은 커질 테고 자칫 ‘2차 주택가격 폭락’이 올 수도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인 지인의 논리였다.
그래도 집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 지인은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며 통계까지 들이댔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늘기만 하던 서울의 실거주인구가 지난해 25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고 금리는 오를 예정이니 아직 집을 사지 말라는 권유, 무시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4월에 집을 계약했다. 그동안 전세살이가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기간 동안 살 집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요즘 이런 전제가 무너졌다. 전세를 얻은 지 2년 만에 “보증금을 1억 원으로 낮출 테니 월세 250만 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집주인과 협상해 전세금을 3000만 원 올려주는 대신 계약기간을 1년만 연장하기로 했을 때 전세살이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로부터 두 달. 즐거움보다는 불안함이 더 크다. 마침 살아나던 부동산 시장이 꺾이기 시작해서만은 아니다. 부동산 시장만큼 정부 정책에 좌우되는 ‘규제시장’도 없는데, 규제의 칼을 휘두르는 정부가 정교한 메스를 대야 할 곳에 무자비한 부엌칼을 대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취득세, 양도소득세 혜택까지 주며 살리려 애쓰던 부동산 시장에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는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되리라는 걸 정부는 진짜 알지 못했을까.
적어도 정책 실행자는 한 수가 아닌 두세 수 앞을 내다봐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수십 년 만에 잡은 내 집 마련의 타이밍이 ‘상투’가 아닐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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