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금융 유관단체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금융당국 간부 출신 인사를 만났다. 그는 취임 이후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이 “막차 탄 걸 축하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바람이 불면서 퇴직 관료들이 산하단체나 기업에 ‘낙하산 인사’로 재취업하는 관행에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관피아의 재취업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자리를 챙긴 퇴직 관료뿐 아니라 이미 자리를 차지한 ‘현직 낙하산’은 상대적으로 서슬 퍼런 여론의 화살에서 비켜나 있다. 후임이 치고 올라오지 않으니 기존에 민간 금융회사나 유관단체로 옮겨간 현직 낙하산 사장과 감사들은 잇따라 연임에 성공하는 분위기다.
올 3월까지였던 김용우 우리은행 감사와 신언성 외환은행 감사의 임기 만료는 연말로 연기됐다. 두 사람은 감사원 출신이다. 3월 18일로 임기가 끝날 예정이던 금융감독원 출신의 정창모 대구은행 감사도 1년 유임됐다. 금감원 출신의 한복환 광주은행 감사는 2008년까지 이 은행에서 감사를 지낸 뒤 신협중앙회로 옮겼다가 3월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여신금융협회 부회장을 거쳐 3월 선임된 한백현 NH농협은행 감사, 저축은행중앙회 부회장을 지내다 2월 옮겨온 김성화 신한카드 감사 등은 금감원 퇴직 이후 금융회사와 유관단체에서 감사와 임원을 두루 거쳤다.
조만간 임기가 끝나는 인사도 연임이나 임기 연장이 유력하다. 이달 24일 3년 임기가 끝나는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 출신 김병기 SGI서울보증보험 사장, 다음 달 3년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원 출신의 윤영일 기업은행 감사 등이 연임설이 나온다.
기재부나 금융당국 출신 관료들의 내정설이 나돌던 손해보험협회장과 주택금융공사장 자리도 인선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각각 10개월, 5개월째 공석이다.
관료 출신 인사가 모두 무능하거나 현직과 유착하는 비리 인사는 아닐 것이다. 임기가 연장됐다고 해서 ‘운 좋은 사람’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하지만 관피아 근절 분위기 속에서 어부지리로 자리를 지키는 관피아를 골라내려면 여론 재판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회 계류 중인 공직자윤리법과 ‘김영란 법’으로 퇴직 관료들의 비정상적인 재취업을 막고 금융현장에서 임원과 감사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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