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 아내가 운전하는 1988년식 쉐보레 블레이저의 조수석에 앉아 시애틀로 향하던 그의 머릿속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고액 연봉을 받던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지만 미련은 없었다. 그해 7월 우리로 치면 ‘수리수리 마수리’와 비슷한 ‘카다브라’라는 상호를 워싱턴 주에 등록했다. 이듬해 이름을 아마존닷컴으로 바꾼 회사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성장을 거듭해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회사이자 정보기술(IT) 업체가 됐다.
인터넷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꼭 20년이 되는 올해 7월 아마존이 또 한 번 의미 있는 시험대에 오른다. 7월 25일 첫 휴대전화 파이어폰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파이어폰은 늘 남보다 싼 가격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았던 아마존이 내놓는 첫 프리미엄 제품이다.
이달 18일(현지 시간) 감색 재킷에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한 시간 넘게 특유의 너털웃음을 섞어가며 파이어폰을 소개했다. 자신만만했다. 주가 하락, 콘텐츠업계와의 분쟁 등 올해 아마존을 둘러싼 악재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발표 직후 시장과 업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649달러, 2년 약정 시 199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아이폰이나 갤럭시S5와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다수였다.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숫자가 안드로이드나 아이폰의 5분의 1 수준이라는 점도 약점으로 꼽혔다.
사실 휴대전화 시장은 최근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 가운데 하나다. 제품 자체의 혁신은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페이스북이 휴대전화를 내놓았지만 실패했고, 구글도 모토로라를 인수했다가 2년 만에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다.
20년간 아마존은 전자책 킨들, 태블릿PC,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내놓는 제품마다 승승장구해왔다. 과연 파이어폰의 미래는 어떨까.
해답은 고객에게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니다. 전화 기능을 갖춘 쇼핑 도구에 가깝다. ‘파이어플라이’는 사용자가 상품을 보다가 전화기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클라우드 기능을 통해 자동으로 인식해 아마존에서 즉시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 20년간 아마존은 고객이 값싼 물건을 편리하게 구매하고, 빨리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미 ‘원클릭’으로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쇼핑 경험을 제공해오던 아마존이 모바일 쇼핑에서 한 발 앞선 기능을 내놓은 것이다.
파이어폰의 초기 출시 가격에 기댄 부정적인 전망은 섣부른 면이 있다. 가격은 분명히 곧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2억5000만 명에 이르는 아마존의 로열티 강한 고객에게 주목해야 한다. 아마존 전자상거래 매출의 3분의 2가 재구매에서 나온다. ‘아마존빠’로 불릴 만한, 연회비 99달러를 별도로 내는 프라임 고객만 2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10분의 1만 구매해도 200만 대다. 여기에 휴대전화로 제공될 아마존의 수많은 콘텐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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