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일요일에는 공원 등 공공장소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모여 앉아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가사도우미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은 홍콩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법적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일요일만 되면 집 밖에 나와 모국(母國)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국적에 따라 필리핀 출신은 ‘페이융(菲傭)’ 인도네시아는 ‘인융(印傭)’ 등으로 부른다.
홍콩은 집 크기가 일반적으로 작기 때문에 입주 도우미를 고용해 같이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 도우미 제도가 홍콩에서 잘 정착한 것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수요 측면을 보면 197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의 관문 역할을 하던 홍콩도 금융 무역 서비스업 등이 덩달아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 수요가 늘기 시작하였고 여성 노동 참여도도 높아졌다. 탁아소 등 육아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낮은 임금으로 가사도우미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는 홍콩 사람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공급 측면을 보면 한때 부자 나라였던 필리핀의 실업률이 높아지자 정부 차원에서 해외 취업 장려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1974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가사도우미를 해외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실업률도 줄이고 외화 수입도 늘릴 수 있는 방안이었다. 나중에는 인도네시아도 동참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인도네시아도 국가 위기에 몰리자 가사도우미 해외 파견을 시작한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홍콩에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홍콩 인구의 4%가 넘는다. 홍콩에서 여덟 가구 중 한 가구는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있는 가구만 보면 세 가구 중에 한 가구는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는 필리핀 출신이 50%, 인도네시아 47%로 두 나라 출신이 대부분을 이룬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정착되면서 홍콩 여성들은 가사 및 육아 부담이 줄었다. 이에 따라 여성의 직장 및 사회 진출도 상대적으로 쉬워졌다. 주변을 보더라도 홍콩에서 맞벌이가 일상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결혼한 여성이 직장을 가지는 비중이 1991년에는 42.5%였는데, 이 비중이 2012년에는 52.1%로 높아졌고, 매년 높아지는 추세이다.
홍콩 여성의 사회 진출은 다양한 분야에서 늘고 있으며 경제성장에도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가정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발생하는 효과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여성의 진출 분야는 비전문직 분야부터 금융 등 전문직 분야에 걸쳐 다양하다. 고위직 진출도 활발해져 여성 고위공무원 비중이 1981년에는 4.9%였던 것이 2012년에는 33.2%까지 크게 늘어났다.
이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용이하게 했지만 최근에는 가사도우미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7년부터 자국민이 해외 가사도우미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초 인도네시아인 가정부가 홍콩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것이 알려지면서 해외 가사도우미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경제가 예전보다 나아지면서 해외보다는 자국 내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는 분위기이다.
최근에 홍콩 여직원이 출산을 했는데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 도우미도 아기를 돌보거나 노인을 수발하는 등의 힘든 일은 피하려 하는 경향이 늘었기 때문이다. 홍콩에 새로 들어오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도 증가율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과거 15년간 물가는 14% 상승했지만 외국인 도우미 임금은 3.9%밖에 오르지 않아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도 커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페이융’ ‘인융’의 도움에 익숙해진 홍콩 직장 여성의 걱정이 앞으로 점점 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