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을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진다. 환갑을 훌쩍 넘긴 홀어머니 집으로 실직, 이혼 등을 겪은 30, 40대 이복 3남매가 돌아온다. 가족의 평균 연령은 47세. 나잇값 못하는 자식들은 딱새 둥지에 탁란(托卵)된 뻐꾸기 새끼들처럼 좁은 집안에서 악다구니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식탁에 삼겹살 한쪽이라도 올리려고 악착같이 일하는 건 나이 든 엄마다.
소설처럼 한국 엄마들의 삶은 노년에도 고달프다. 불황에 일손을 놓은 자식과 남편 대신 ‘여사님’, ‘아줌마’ 소리 들어가며 마트로, 보험대리점으로, 식당 주방으로 향한다. 지난달 여성 고용률이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인 50.2%를 기록한 건 쉰이 넘어서도 생계 전선에 뛰어든 엄마들 덕분이다.
고령화 가족은 부자가 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늙어버린 한국을 살아가는 이 시대 중산층의 초상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을 위해 싼 임금과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가고, 국내에 남은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로봇이나 컴퓨터로 노동력을 대신한다. 경제 민주화를 명분으로 대기업을 압박해도 해결할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중산층 일자리 가뭄의 근본 원인이다. 한국의 탄탄한 중산층을 만든 ‘화이트칼라’ 관리직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아들과 아버지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갈등해야 할 판이다.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 공부를 시키고 신접살림집을 마련해줘야 부모 노릇을 했다고 믿는 한국인들은 가시고기처럼 모든 걸 자녀에게 내어주고 ‘하우스 푸어’로 늙어간다. 기대수명은 선진국 평균 이상이지만 자산이 감소하는 시기는 미국 일본보다 10년 이상 빠른 60세부터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서 낙오한 자녀가 얹혀살기라도 하면 영화 속 고령화 가족이 현실이 된다. 중산층 가족이 일자리도, 소득도, 자산도 없는 ‘닌자(No Income, No Job or Asset) 가족’으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지난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 70%, 고용률 70%’를 국정의 목표로 제시했다. 정부가 재정을 풀거나 기업을 닦달해 고졸이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률 목표를 채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중산층 70%는 회복되지 않는다. 미국 독일 일본이 정보기술(IT)과 서비스업이 융합하는 차세대 제조업에 투자하고 ‘RDE(쇼핑 외식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창조산업을 육성하는 건 세계화와 기술 진보로 사라진 중산층 일자리 복원 프로젝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 2기 임기 첫 국정연설에서 중산층 일자리 복원 의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8일 국회 청문회를 무사히 마치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2기 경제팀이 출범한다. 새 경제팀이 양질의 중산층 일자리를 재건하는 ‘국가경제 개조’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닌자 가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일자리가 아닌, ‘중산층 일자리’의 복원. 힘센 부총리에게 거는 기대다. 새 경제팀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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