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강모 씨(36)는 현대자동차의 ‘그랜저HG 2.4 가솔린’을 타다 올해 초 경유차인 폴크스바겐 중형 세단 ‘CC 2.0 TDI’ 중고차를 구입했다. 직업 특성상 이동이 잦다 보니 공인 연료소비효율(연비)이 L당 15km 이상 나오는 경유차가 눈에 들어왔지만 신차는 5000만 원에 육박해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그랜저를 팔고 자동차 동호회를 통해 2010년식 CC를 2800만 원에 샀다. 강 씨는 “일반 중고차 시장에서 샀으면 3000만∼3200만 원은 줘야 하지만 동호회를 통해 사서 비용을 더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수입 중고차 연간 7만 대 판매 시대
30대 전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수입 중고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 판매가 늘었던 수입차 리스차량이 올 들어 중고차 시장에 나오고 있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 상당수 리스차량 운전자들은 매달 일정액을 내고 차를 타다 3년 만기가 되면 차를 여신금융회사에 반납한다. 여신금융회사들이 회수한 차량을 중고차 매매상에 넘겨 최근 매물이 대거 나왔다. 공급이 늘면서 수입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차를 타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젊은층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연간 수입 중고차 거래대수는 2011년 5만6529대에서 2012년 5만8254대로 소폭 늘었으나, 지난해는 7만549대로 2012년 대비 21.1%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전체 중고차 거래대수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5.9%에서 올 상반기(1∼6월) 7.6%로 늘었다. BMW 중고차를 파는 도이치모터스 서울 양재전시장 관계자는 “‘320d’는 들어오기도 전에 계약금부터 내고 선착순으로 계약할 정도”라고 말했다.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입차에 익숙해진 젊은층들은 이미 첫 차에 대한 눈높이가 현대차 ‘아반떼’에서 폴크스바겐 ‘골프’로 높아져 있다”며 “중고차를 구매하는 것은 나름의 합리적인 소비”라고 분석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량은 99만4918대로 신차 판매량 154만3564대의 64.5% 수준이다. 미국에선 2012년 중고차가 4050만 대 팔렸다. 신차(1450만 대)의 3배 수준이다.
○ 수입차 업체들 인증사업 뛰어들어
한번 수입차를 탄 운전자들은 웬만해선 국산차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수입차 신차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수입차 업체들이 잇달아 중고차 인증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BMW코리아는 2005년 중고차 인증사업을 시작했다. 자사 브랜드의 차량을 매입한 뒤 품질보증을 해 되파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이달 초 타사 브랜드 차량까지 매입하기로 했다. 다른 브랜드 차를 타던 고객이 전시장에 와서 차를 판 뒤 바로 자사 차량을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폭스바겐코리아와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도 연내 중고차 인증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가 중고차를 직접 관리하면 중고차 가격이 덜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며 “운전자들은 차량을 사면서 되팔 때 가격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결국 중고차 가격을 관리하면 신차 판매도 늘어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레몬 마켓’ 투명화 vs 골목상권 침해
중고차 시장은 통상 ‘레몬 마켓’이라 불린다. 중고차는 속이 신 레몬처럼 겉으로 봐서는 잘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판매자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반면 사는 사람들은 정보가 적다. 수입차 브랜드들과 대기업들이 인증사업에 뛰어들면서 중고차의 사고 이력 및 부품 상태, 가격 등이 투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입차 브랜드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일각에서는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3월 중고차판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인 SK엔카는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할 수 없게 됐지만 수입차 업체들은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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