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각종 철도요금 할인제도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로 알려진 지난달 31일 국토교통부는 하루 종일 분주했다. ‘편법 요금 인상’이라며 부정적 여론이 일자 당황한 것이다. 청와대가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뜻을 국토부에 전하자 밤늦게 국토부는 부랴부랴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날 여권 관계자들은 7·30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요금을 올리겠다고 나선 코레일을 두고 “정무감각 제로”라고 비판했다. 국토부도 최근 갖가지 안전사고가 있었던 차에 요금체계 개편안을 꺼낸 코레일을 두고 “성급했다”고 질책했다.
하지만 공기업인 코레일이 국토부, 여당과 교감 없이 요금체계 개편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 당초 코레일은 이 개편안을 6월 중순 시행할 방침이었다. 당시 이 내용을 보고받은 여권 관계자는 “재·보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선거 뒤에 하라”며 제동을 걸었다. 코레일은 선거가 끝난 뒤인 8월에 요금체계를 바꾸기 위해 준비해왔다. 지난주에는 개편안을 확정해 언론에 배포할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뒀다. 6월이나 지금이나 요금개편의 필요성 여부는 여당, 국토부, 청와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로지 ‘정무적 판단’이 있을 뿐이었다.
재·보선이 끝나기만 기다렸던 코레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정부의 ‘부채과다 중점관리 대상기관’인 코레일은 올해 ‘공사 출범 이래 첫 영업흑자 달성’을 목표로 각종 수익창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할인제도 개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번에 추진이 미뤄지면 연내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부양 카드를 연일 쏟아내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공공기관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공공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모를 리 없다. 공기업이 방만경영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다면 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공공요금을 올리지 못해 공기업의 부실이 커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공기업만 꾸짖을 게 아니라 국민에게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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