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3일 오전 2시 40분을 기해 리비아에 있는 3개 현장 중 가장 위험한 트리폴리 웨스트화력발전소 공사장 직원 50여 명을 인접국인 몰타로 긴급히 피신시켰다. 무장단체 간 전투가 격화돼 정부가 지난달 30일 한국인 철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이미 지난달 28일부터 비상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직원들이 무장단체에 사로잡힐 가능성 등 위험 변수를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리비아 현지에는 이 업체를 비롯해 한국 건설사 직원 460여 명이 체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지만 많은 대형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자리를 비울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정 사장은 아직 휴가 일정을 못 잡았다.
건설사 CEO들이 휴가를 못 떠나는 이유가 중동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2009년 호남고속철도 공사 때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부과한 4355억 원의 ‘과징금 폭탄’도 발을 묶었다. 공정위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2009년 진행된 대규모 공사의 담합 조사를 계속 벌이고 있는 만큼 언제 다른 담합 건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을지 예상하기 어려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룹이 워크아웃 상태인 데다 호남고속철도 공사 담합 때문에 81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된 금호산업의 원일우 사장은 이달 중순 주말을 끼고 하루 이틀 쉬는 정도로 휴가를 끝낼 예정이다. 193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GS건설 임병용 사장은 “CEO가 휴가를 가지 않으면 임직원들이 눈치 보느라 쉬지 못한다”며 지난달 28일 출국했지만 실은 싱가포르 인도 터키 태국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며칠간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조용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산적한 국정 현안을 두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걱정의 크기는 달라도 건설사 CEO들의 마음 역시 비슷할 것 같다. 대통령도, 건설사 CEO도 속 편히 휴가 갈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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