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어느 날,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의 5년 차 신발 개발자인 카야노 도시카즈 씨(당시 28세·사진)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30장이 넘게 제품 콘셉트를 스케치했지만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회사는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마케팅 팀과 함께 일하면서 새 아이디어를 찾아보라는 뜻이었다.
신제품 아이디어는 우연한 순간에 찾아왔다. 미국 팀원들과 저녁을 먹던 그는 냅킨 위에 급하게 무언가를 그려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슴벌레 모양의 제품 콘셉트였다. 지나가듯 그린 이 디자인은 이후 20년을 넘게 이어진 아식스의 주력 러닝화 ‘젤 카야노(Gel-Kayano)’ 시리즈의 원형이 됐다.
스포츠 브랜드가 유명 운동선수가 아닌 디자이너의 이름을 제품명으로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카야노 씨는 지금도 아식스 디자인센터 글로벌 제품 마케팅부 디자인 총괄 매니저로 일하면서 같은 이름의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러닝화의 장인(匠人)이다.
카야노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젤 카야노 시리즈는 높은 기술력과 훌륭한 디자인을 동시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은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의 초점을 차례로 바꾸는 식으로 진행됐다. 초기(젤 카야노 1∼5)에는 ‘쉽고 재미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젤 카야노 6∼19에서는 아식스의 기술력을 반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수치화할 수 있게 된 아식스의 기술력을 소비자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 덕분에 ‘젤 카야노 10’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일본 대표팀의 선택을 받기도 했다.
최근 시판된 20번째 러닝화 ‘카야노 20’부터는 개발 포인트를 다시 디자인으로 옮겼다. 기술력은 충분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카야노 씨는 “아식스는 지난 65년 동안 전 세계 소비자들의 발 모양 데이터(LAST)를 축적해 왔다”며 “이런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식스는 이 제품의 시판을 기념해 다음 달 13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일대에서 ‘2014 아식스 쿨 런’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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