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TV 74만원 싸다더니… “상조 가입하셔야 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못믿을 전자제품 매장 가격표

대형 전자제품 매장들이 ‘조건부 할인 가격’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일반 할인 가격인 것처럼 표기하는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신용카드 회원 가입을 해야 할인이 적용되거나(왼쪽 사진), 상조회사 서비스에 가입해야 할인이 되는 가격을 아무런 설명 없이 써 붙여 놓은(가운데 사진) 모습들. 심지어 가격을 명시해 뒀지만 점원이 설명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부르는 게 값’인 곳도 있었다. 김용준 인턴기자
대형 전자제품 매장들이 ‘조건부 할인 가격’을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일반 할인 가격인 것처럼 표기하는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신용카드 회원 가입을 해야 할인이 적용되거나(왼쪽 사진), 상조회사 서비스에 가입해야 할인이 되는 가격을 아무런 설명 없이 써 붙여 놓은(가운데 사진) 모습들. 심지어 가격을 명시해 뒀지만 점원이 설명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부르는 게 값’인 곳도 있었다. 김용준 인턴기자
최근 노트북을 사기 위해 롯데하이마트의 한 점포에 들른 직장인 김준혁(가명·28) 씨는 ‘H사의 142만 원짜리 노트북을 126만 원에 할인 판매한다(A카드 결제 시)’는 가격표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점원은 “바로 할인받는 금액은 5만 원”이라며 “나머지 11만 원 중 5만 원은 카드 포인트로 지급되고, 6만 원은 본인이 신용카드를 신규 발급받은 후 15개월 안에 실적 포인트를 쌓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카드 실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거나 카드를 중도 해지하면 남은 금액이 청구된다”고 덧붙였다. 10분 넘게 설명을 들은 후에야 김 씨는 무조건 16만 원 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형 전자제품 매장들이 ‘비정상적인 할인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용카드 포인트 할인 등을 이용한 꼼수. 조건부 가격을 일반적인 할인 가격인 양 표시해놓고 소비자가 구입 문의를 하면 그제야 실제 조건을 제시하는 식이다.

가전제품과 전혀 상관없는 서비스 가입을 조건으로 내거는 곳도 있다. 취재차 들른 서울의 한 LG전자 베스트숍 매장에서는 195만 원짜리 초고화질(UHD) TV를 74만 원 할인한 121만 원에 판매한다는 가격표를 붙여놓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직원에게 TV를 사겠다고 하자 “할인을 받으려면 D상조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는 황당한 조건이 제시됐다. 직원은 “매달 3만9900원씩을 100개월(8년 4개월) 동안 납입해야 하고 중도 해지 시 납입 금액의 85%만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조 서비스 가입 조건은 가격표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현재 전자제품 가격 표시가 정찰제가 아닌, 오픈프라이스 방식(최종 판매업자가 가격 결정과 표시를 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오픈프라이스의 원래 취지는 업체들 간의 자율 경쟁을 통해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꼼수로 변질되고 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은 “가격표만 봤을 때 정확한 할인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한 것은 업체들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런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무법인 정률의 황은영 변호사는 “실제 할인 내용을 가격표에 표시하지 않거나 제품과 관련 없는 서비스 가입을 권유하는 것은 소비자 유인 및 기만에 해당하며, 이는 ‘표시 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이에 대한 처벌 및 제재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최종 구매는 소비자가 가격표 외에 매장 직원의 설명까지 들은 후 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가격표에 설명이 빠져 있다는 것만으로 업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용준 인턴기자 동국대 신문방송학·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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