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사업 입찰 담합으로 적발된 건설사들이 무더기로 공공 공사 입찰참가 제한 처분을 받았다. 기술력이 높은 대형 건설사들이 상당 기간 국책공사를 수주하지 못하게 되면서 국가 기반시설 건설 등 대형 공사 수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대외신인도 하락 등으로 해외사업 수주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은 22일 경인운하사업 발주처인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관급공사 입찰자격 제한 처분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들과 함께 삼성물산 동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한라 동아건설산업 남양건설 금강기업 SK건설 대림산업 등 총 13개사가 향후 4∼24개월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 발주하는 모든 공사에 입찰할 수 없다. 이번 조치는 담합행위가 적발되면 징계 기간에 어떠한 공공공사 입찰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국가계약법에 따른 것이다.
각 건설사는 일제히 “법에 따른 제재 조치라고 하지만 과징금 부과에 이어 입찰제한 조치까지 내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제재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번 제재가 확정될 경우 각 업체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24개월간 입찰제한 처분을 받게 된 동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2년간 누적 손실액이 각각 지난해 매출액 대비 73.45%(1조4674억 원)와 26.4%(1조112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다른 건설사들의 매출 손실액도 지난해 매출액의 10∼2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4월 경인운하사업 입찰 담합의 책임을 물어 이 13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 중 11개사에 총 99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과징금에 이어 입찰제한 징계까지 받게 되자 각 건설사는 “이중 처벌은 지나치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선진국들은 담합 적발 시 다른 처분 없이 고액의 과징금만 부과하고 있다”면서 “이번 제재로 회사가 휘청댈 정도로 큰 타격을 받게 된 업체가 적지 않은 만큼 합리적인 수준에서 처벌 수위가 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발주 시기가 한꺼번에 맞물려 담합을 조장하는 현행 공공 공사 발주 시스템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들어 담합 혐의로 건설사에 부과한 과징금은 총 7493억 원에 이른다. 대형 건설사들은 인천도시철도 2호선, 4대강 1차 턴키공사, 대구도시철도 3호선, 부산지하철 1호선, 호남고속철도 등 굵직한 국책사업에서 일제히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담합 처벌의 여파는 국내 공사뿐 아니라 해외 현장에서도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랍에미리트의 한 발주처는 2월 원자력발전소 입찰에 참여한 국내 건설사 중 4대강 사업으로 담합 판정을 받은 업체들에 “담합 경위와 향후 사업에 미칠 영향을 소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6월 동남아시아에서 한 대형 플랜트 공사 입찰에 참가한 A건설 관계자는 “발주처가 담합 판정 소명을 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기에 사정을 알아봤더니 경쟁 상대였던 일본 업체가 부추겼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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