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없는 中企 ‘기술력 대출’은 여전히 높은 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6일 03시 00분


‘중기 살리기’제도 취지 무색
은행들 7월 자율대출 8건뿐… 기술평가 대출 금액의 0.6% 불과
국민-우리-신한은행 한건도 없어… “기술금융 적극제공” 결국 빈말

은행들이 중소기업의 기술력만 믿고 돈을 빌려준 기술금융이 7월 한 달간 8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은행권 보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은행들이 기술금융을 적극 제공하겠다고 홍보해 왔지만 결국 구두선에 그친 셈이다.

은행들은 은행들대로 기술신용에 대한 평가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기술력만 믿고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는 돈을 떼이는 일이 속출할 것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 순수 기술금융은 미미

2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7월 한 달간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신용평가 등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기술평가서를 바탕으로 총 555건(3300억 원)의 대출을 제공했다.

금융당국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담보가 없어도 TCB의 기술평가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라고 은행권에 권고해 왔다. 은행권도 정부의 정책 방침에 맞춰 적극 기술금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TCB 대출은 은행이 보증서나 담보 없이 TCB의 기술평가를 바탕으로 실행하는 자율대출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부대출,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민간은행에 대출을 위탁한 간접대출)’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555건 중 은행들이 기업의 기술력만을 바탕으로 보증이나 담보 없이 실행한 자율대출은 8건(19억 원)뿐이었다. 전체 TCB 대출 중 건수로 1.4%, 대출액으로는 0.6% 수준이다.

은행별 자율대출 건수는 산업은행 3건, 기업은행 1건, 하나은행 3건, 전북은행 1건 등이었다. 국민, 우리, 신한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들은 자율대출을 한 건도 실행하지 않았다. 8건의 자율대출을 제외한 다른 TCB 대출은 모두 기보의 보증부 대출이나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이었다. 이달에도 하나은행이 3건의 자율대출을 추가로 시행했을 뿐 나머지 은행들의 자율대출 실적은 전무한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TCB 대출이 500건이 넘었지만 온렌딩과 보증부 대출 등 정부가 이미 진행 중이던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제외하면 새로운 기술신용 대출이 거의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 ‘보신주의’vs‘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은행들의 태도가 기술금융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금융은 순수하게 기술력만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인데 은행들은 여전히 보증서와 담보 없이는 대출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민간 기술신용평가기관 관계자는 “은행들이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며 “은행들의 태도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은행들은 기술금융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보신주의’라는 비난은 지나치다고 토로하고 있다. 고객 돈으로 대출을 하는 은행으로서는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담보와 보증서 없이 대출을 해주는 게 큰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TCB가 기업에 기술신용평가를 내리면 이를 바탕으로 대출한도 등을 설정해야 하는데 아직 은행 내부에 기술평가 관련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TCB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이유로 꼽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떻게 하면 연체 위험을 줄이면서 TCB 대출을 늘릴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공동펀드를 만들어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실책도 기술금융 부진에 영향


은행들이 TCB를 적극 실행하지 않는 데에는 금융당국의 실책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기보와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 등 3개 기관을 TCB로 정했다. 하지만 기술력만을 바탕으로 대출하는 자율대출의 경우 한국기업데이터와 나이스만 TCB로 허용했다. 은행들이 TCB를 고를 때 기업평가 노하우가 축적된 기보로 쏠림현상이 나타날 것을 우려해서다. 이를 두고 민간 기술신용평가기관을 육성한다는 정책 목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금융당국이 무리한 규제를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개인의 신용평가를 주로 해 온 민간기관은 아직 기업평가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부족하다”며 “부실 위험을 감수하고 기술신용평가에 의지해 대출을 해야 하는데 금융당국이 평가 기관조차 마음대로 못 정하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정임수 기자
#기술력#기술금융#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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