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은행 통합은 2006년 신한-조흥은행 합병 이후 8년 만이다.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이 성공리에 마무리될 경우 은행권의 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28일 “(통합을) 미루는 것은 조직과 주주, 사회에 대한 배임”이라며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 회장은 올해 안에 조기통합을 마무리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하나-외환은행 합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중복 부분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조직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한다.
○ 지금은 사라진 ‘조상제한서’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역사는 합병의 역사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문을 닫는 은행이 속출하면서 은행권에는 인수합병 바람이 불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한빛은행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국민은행 조흥은행 하나은행이 각각 합병을 통해 재탄생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2차 은행 구조조정에서는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리던 우리나라 5개 대표 시중은행이 사라지고 국민 하나 우리 신한은행이 합병을 통해 거대 은행으로 등장했다.
국내 은행 합병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2006년(자회사 편입은 2003년) 신한과 조흥은행의 합병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이 두 은행의 통합전략을 사례 연구과제로 다뤘을 정도다. 신한과 조흥은행의 2003년 3월 말 기준 총자산은 각각 74조4000억 원과 74조8000억 원이었다. 합병으로 새롭게 출범한 신한은행은 2006년 말 기준 총자산 177조 원으로 국민은행에 이어 시중은행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매머드급 은행으로 성장했다. 재무 건전성 지표도 개선됐다. 2004년 말 기준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각각 11.94%, 9.40%였다. 하지만 합병 후 2006년 말 기준 신한은행의 BIS비율은 12.01%로 상승했다.
○ 하나-외환 물리적 화합 넘어 화학적 결합 이뤄야
국내 다른 시중은행들과 달리 합병을 거친 적 없는 외환은행은 순혈주의가 유난히 강한 편이다. 한국은행에서 분리돼 국책은행으로 세워졌던 만큼 엘리트 의식도 남다르다. 외환 내부에서는 “차라리 산업은행이나 HSBC에 합병됐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올 만큼 자존심이 세다.
전문가들은 하나-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성공은 두 조직이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두 은행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감성적으로 결합한다면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고 합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2003년 9월 조흥은행을 인수한 뒤 3년간 ‘투 뱅크’를 유지할 때 두 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수백 개의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하나-외환은행 합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복 부분을 최소화하고 하나은행이 가진 소매금융의 경쟁력과 외환은행이 가진 기업금융, 외환 부문의 경쟁력을 그대로 살리면서 장기적으로 조직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력의 효율적인 재배치
은행 합병이 노조의 반발에 부딪치는 가장 큰 이유는 합병에 따른 구조조정과 피합병은행의 인사 불이익 우려 때문이다. 외환은행 김한조 행장은 합병 후에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외환은행 구성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1976년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서울신탁은행의 경우 효율적인 인력 재배치를 하지 못해 은행 합병에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합병을 주도한 정부는 두 은행이 각각 소매금융과 신탁업무에 강점을 가져 상호보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계속된 파벌 싸움으로 한 조직 내에 두 개의 인사부가 존재하는 등 비효율적인 인력 운용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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