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회장-국민은행장 중징계]경징계 받고도 내분 격화… 결국 레드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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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2주간의 장고 끝에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고 4일 KB 수뇌부에 대한 동반 중징계를 강행한 것은 KB금융 경영진의 ‘진흙탕 싸움’을 더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최근 벌어진 금융사고와 내부갈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라는 ‘레드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 행장은 중징계 발표 직후 1시간 만에 사의를 표명했지만 임 회장은 진실을 밝히겠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KB금융은 후임 은행장이 결정될 때까지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데다 수뇌부의 동반 중징계로 조직이 충격에 휩싸이는 등 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몰렸다.

○ 금감원장, 논란 불구 중징계 강행

지난달 21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두 사람에 대한 경징계 결정을 내린 직후만 해도 최 원장이 이를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금감원장이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 결정을 뒤집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며칠 새 기류가 급반전됐다.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처분 이후 KB 내분 사태가 오히려 더 격화되면서 금감원장이 KB 사태 해결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이 행장과 임 회장은 KB지주가 경영진 화합을 위해 마련한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방 배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표출했고, 이 행장은 임 회장을 겨냥해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된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최 원장은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 문책경고를 내릴 수 있다는 감독 규정에 근거해 중징계를 관철했다.

이날 최 원장은 KB 제재 결과를 직접 브리핑하면서 “경영진의 갈등으로 고객 불안이 야기되고 있고 KB금융 자체의 수습 노력도 미흡해 금융권 전체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임 회장에 대한 최종 징계는 금융위원회의 의결이 남아있지만 제재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향후 금융위가 임 회장의 징계 수위를 낮추기는 힘들 것”이라며 “‘관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 자칫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금융관료)가 제 식구를 감싼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KB금융 혼란 불가피


이에 따라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그룹의 지배구조는 다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 행장은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감독당국에서 적절하게 판단한 것으로 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임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가 최우선”이라며 “권리 구제 절차를 통해 정확히 진실이 규명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금융위의 중징계 확정 이후 이의신청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임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행정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징계 중 가장 낮은 단계인 문책경고는 법적으로 현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임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퇴진 압박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 행장에 이어 임 회장마저 사퇴할 경우 KB금융은 회장과 행장을 모두 새로 선임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지주 회장 및 행장 간의 갈등 체제에 있다는 지적을 감안하면 직원들의 신망을 받는 내부인사 출신이 회장이나 행장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KB금융 내부에서는 벌써 국민은행 부행장 출신 인사 서너 명이 차기 수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임 회장이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불복하는 양상을 보일 경우 KB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금감원이 6차례 회의 끝에 내린 제재심의위의 결정을 번복하면서 제재 시스템의 기틀을 흔들고 금융권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 문책경고 ::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중징계 중 하나로 금융 관련 법규를 위반하거나 이행을 태만히 한 경우 내려진다. 문책경고를 받은 금융회사 임원은 연임을 하지 못하고 퇴직 후 3년간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어 사실상 금융권 ‘퇴출’ 통보로 간주된다.

정임수 imsoo@donga.com·유재동·신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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