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자원개발… 석유公, 결국 캐나다 자회사 헐값 매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8781억 들여 깡통기업 ‘묻지마 인수’… 5년만에 수천억 손실 보며 팔아
MB정부 무리한 정책에 세금 낭비… 산업부 “수익성 낮은 사업 구조조정”

한국석유공사가 ‘부실 투자’ 논란을 빚었던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사의 정유부문 자회사를 해외에 매각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이던 해외 자원개발 투자에 대해 현 정부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에너지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면서 국부(國富) 손실을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분 100%를 가진 하베스트의 정유 자회사 ‘노스 애틀랜틱 리파이닝(NARL)’을 미국 금융회사 ‘실버레인지 파이낸셜 파트너스’에 매각하는 계약을 5일 체결했다. 매각대금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석유업계에서는 석유공사가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면서 이 회사를 파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베스트 투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대표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다. 2008년 정부는 향후 5년간 19조 원을 투입해 해외 원유 생산규모를 5만 배럴에서 30만 배럴로 늘리는 내용의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 한국가스공사의 이라크 아카스 가스전 지분 인수,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파나마 구리광산 사업 참여 등이 이뤄졌다.

문제는 사업 추진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수익성을 꼼꼼하게 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석유공사는 2009년 40억7000만 캐나다달러(약 3조8411억 원)를 들여 하베스트 지분 100%를 사들였지만 유가 하락 등의 여파로 자산가치가 급락해 2013년 말 현재 1조1664억 원의 투자 손실을 봤다. 감사원이 2012년 부실투자 문제를 지적하며 관련자 징계를 요구하자 강영원 당시 석유공사 사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물러나기도 했다.

‘끼워 팔기’ 논란도 불거졌다. 당초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탐사-시추 관련 부문만 사들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약 직전 하베스트 측이 정유 자회사 NARL까지 사야 한다고 조건을 바꿨고 석유공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인수대금만 9억3000만 캐나다달러(약 8781억 원)다.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NARL은 캐나다 국영석유회사가 1986년 단돈 1달러에 팔아치운 사실상의 깡통기업”이라고 밝히며 “기초정보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히 계약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자원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실패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에너지 공기업 내실화 방침에 따라 수익성이 낮은 개발사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자원개발 정책의 틀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11년 38억 달러에 달했던 자원개발 신규 투자비를 지난해 1억6000만 달러로 대폭 줄였다.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 부채 축소 정책을 내세운 뒤 주요 에너지공기업들이 이명박 정부 때 사들였던 광구를 매물로 내놨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에너지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비쌀 때 급하게 사들인 해외 광구를 값이 떨어지자 서둘러 매각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정부가 중장기적인 해외자원 확보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한국석유공사#하베스트#정유회사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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