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자기와 다른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아주 약간만 선호하거나, 자기와 같은 사람이 많기를 아주 조금만 바라는 경우에도 극단적 분리 상태가 나타났다. ―‘경제학 콘서트’(팀 하포드·웅진지식하우스·2008년)
어떤 지역에는 백만장자들만 모여 살고 거기서 가까운 인근 지역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 이론가 토머스 셸링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체스판을 통해 보여준다. 흰말 다음 검은말, 검은말 다음 흰말… 이런 식으로 체스판을 채우면 체스판은 두 종류의 말이 완벽히 섞인 유토피아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흰말과 검은말을 무작위로 두 개씩 빼보자. 4개만 뺐는데도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다. 몇 개의 흰말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검은말 사이에 있게 된다. 이에 부담을 느낀 흰말이 흰말들이 좀 더 많은 동네로 이사한다. 이로 인해 또 다른 흰말은 더 많은 검은말 사이에 있게 된다. 이 흰말도 흰말들이 많은 동네로 이사한다. 결과적으로 흰말은 흰말끼리, 검은말은 검은말끼리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득과 학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동네가 형성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슬프지만 냉정한 이 현실을 우리는 그저 무력하게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열등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더라도 승자가 나오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만 맡겨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열등한 지역과 우월한 지역의 경계선에서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돈을 번다. 돈 버는 사람들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경계선으로 몰려들어 결과적으로 고립된 두 세계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진다.
우리나라는 지금 두 세계의 분리가 가속화되는 지점에 있다. 시장 논리만으로도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니 기대해봄 직하다. 다만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 ‘차별을 당하면서도 성장을 그치지 않는’ 강한 인물이더라는 전제가 달려 있는 것이 너무 단선적인 결론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의 분석이 현실에서 구현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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