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000여명 “경영정상화” 구호… 철도노조원들 “관제 데모” 야유
부채 중점관리 18개 공공기관중… 유일하게 노사합의 못해
“방만경영 해소하라.” “미해결 과제 타결하라.”
11일 오전 11시경 서울역 광장에서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 1000여 명이 이런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역뿐만 아니라 전국 5개 역에서 8000여 명이 같은 시위를 벌였다. 특이하게도 직원들이 시위를 벌인 대상은 경영진이 아닌 노조 집행부였다.
수십 명의 철도노조원도 ‘맞불’을 놓았다. 집회 시작 전부터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서울역 결의대회 현장을 에워쌌다. 몇몇 노조원은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방만경영의 주범이다” “퇴직금을 줄이겠다는 게 경영정상화냐, 사기 치지 마”라며 동료를 향해 고성과 야유를 보냈다. 노조원이 대거 포함된 직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겨냥해 장외집회를 벌인 건 코레일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16일 열리는 철도노조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직원들이 공공기관 경영정상화 대책에 노조 집행부가 조속히 합의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일부 노조원은 ‘관제 데모’라며 집회 참석자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극심한 노노(勞勞) 갈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코레일을 포함한 부채과다 중점 관리 기관으로 지정된 18개 공공기관은 20일까지 방만경영 개선 과제에 대한 노사 합의를 해야 한다. 이 기관들 중 코레일만 유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실 코레일 노사는 지난달 퇴직금 산정 방식을 뺀 15개 과제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이달 초 노조 조합원 총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됐다.
집행부가 도장까지 찍은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노조 집행부는 불신임을 받아 사퇴했고, 현재 코레일 노조 집행부는 직무대리 체제다. 갈등의 핵심은 퇴직금 산정 방식으로 현 집행부는 ‘차기 집행부 논의 사항’이라며 협상 테이블에 아예 나서지 않고 있다.
최연혜 사장을 비롯한 코레일 경영진은 “해고자 중심의 왜곡된 노조활동으로 합리적인 대화가 안 된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어느 공공기관이라고 노조가 강성이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지난해 12월 23일간 최장기 철도파업이 끝난 지 8개월이 넘도록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의 방향조차 잡지 못한 데에는 코레일 경영진의 무능에도 원인이 있어 보인다.
코레일 노사는 6월부터 39차례에 걸쳐 교섭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런데도 사내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노조원들은 참석 동료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철도노조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정신 나간 ×들”이라는 비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상태라면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올 6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하인 E등급을 받았던 코레일이 내년 평가에서도 크게 나아지기 어려워 보인다. 하루빨리 정상 궤도에 올라서야 하는 코레일의 혁신이 늦춰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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