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量)에서 질(質)로 관점을 바꾸자. 문제를 묵인하거나 관행이라는 이유로 방치하지 말자. 회사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즉시 실천하자.”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아모레퍼시픽 본사 강당. 본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51·사진)은 오른손을 들고 이같이 외쳤다.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에서 서 회장은 “나부터, 우리 팀부터, 우리 조직부터 먼저 바꾸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는 비상경영 체제의 시작이었다.
2013년은 아모레퍼시픽에 매우 어려운 한 해였다. 방문판매 특약점 대표들과의 마찰로 ‘갑(甲)질’ 논란에 휩싸였고, 해외 계열사 구조개편 작업도 여의치 않았다.
당시 주가는 사면초가에 놓인 아모레퍼시픽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2013년 초 100만 원을 웃돌던 주가는 그해 10월 8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3분기(7∼9월)에는 해외사업 매출도 적자로 돌아섰다.
서 회장은 비상경영 선포 후 브랜드, 국가별로 따로 진행되던 마케팅 전략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 결실이 바로 지난해 말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설된 통합전략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 조직이다. 서 회장은 또 유통채널의 다변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약 1년간 진행된 아모레퍼시픽의 비상경영 체제를 두고 업계에서는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올 초 100만7000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8월에 200만 원을 넘겼다. 16일 현재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18만9000원이다. 매출 반등에도 성공했다. 상반기(1∼6월) 해외사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성장한 3827억 원이었다. 이는 전체 매출의 20.2% 수준이다.
서 회장의 최근 행보는 단기적인 분위기 전환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가 대표적이다.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연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연 매출의 3%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서 회장은 17일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건립을 위해 10억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5일 열린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도 “원대한 기업으로 도약하자”며 질적 향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과거 기념식 때마다 “세계 7대 화장품 메이커 진입”, “매출의 절반은 해외에서 거둘 것” 등의 양적 목표를 내걸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 회장이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기점으로 질적 향상과 혁신에 더욱 힘을 쏟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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