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시간 후 사무실. ‘더블 샷’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졸음을 쫓으려 해봐도 나른한 가을 햇볕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슬며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자 주말 인천아시아경기 결과가 궁금해진다. 뉴스검색에 이어 오늘 있을 경기일정까지 체크하고 나니 친구에게서 깜빡깜빡 카카오톡 메시지가 뜬다. 칸막이 너머 부장 눈치를 보며 한참 메신저 수다를 떨다보니 간신히 잠이 깬다.
○ 딴짓 안 해본 직장인 나와 봐
짬짬이 하는 딴짓은 빡빡한 회사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활력소. 물론 대놓고 딴짓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들은 보안 및 업무집중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외부 사이트나 메신저 접속을 제한하고 있다. 뒤에서 불쑥 나타나 ‘후방주의’를 하게 만드는 상사도 무섭다. 하지만 뛰는 회사 위엔 나는 직원들이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519명을 대상으로 ‘업무 중 딴짓 경험’을 조사한 결과 96.9%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로 하는 딴짓으로는 웹서핑(31.4%)이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메신저채팅’(27.6%)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리’(12.2%) ‘인터넷 쇼핑’(8.1%)을 많이 했다. 딴짓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7분이었다.
○ 딴짓, 어디까지 해봤니
‘접근하신 사이트는 유해정보 혹은 비업무 사이트로 접근하실 수 없습니다.’ 리서치 회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32)는 얼마 전 옆 부서 팀장이 업무 중에 대놓고 게임을 하다 회사 대표에게 걸린 뒤 딴짓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게임, SNS, 주식정보 사이트 등이 모두 차단됐기 때문이다.
김 대리가 찾아낸 해법은 ‘원격 접속’. 회사 컴퓨터로 집에 있는 컴퓨터에 원격접속해 차단된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김 대리는 “집 컴퓨터를 하루 종일 켜 놔 전기요금이 더 나가지만 딴짓의 즐거움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유업체에 다니는 3년 차 사원 이모 씨(30)는 스마트폰 화면을 PC와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 ‘모비즌’을 쓴다. 진지한 표정으로 PC모니터를 보며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실은 모바일 게임 ‘영웅의 군단’을 하는 중이다. 이도저도 어렵다면 화장실이 해방의 공간이 된다. 은행에 다니는 신모 씨(30·여)는 “스마트폰으로 메신저, 게임 등을 하는 사람들로 늘 회사 화장실이 만원”이라고 전했다.
○ 몰래 해서 더 재밌다 ‘몰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상사의 눈을 피하는 ‘몰컴(몰래 컴퓨터)’ 테크닉은 사무실 딴짓을 위한 필수요소다. 마케팅업체에 다니는 김모 대리(31)는 야근할 때면 프로야구 경기를 챙겨보곤 한다. PC창에 워드며 엑셀, 계산기 등을 복잡하게 띄워놓고 한편에는 야구중계 화면 크기를 4분의 1로 줄여 위장한다. 최근에는 중계해설을 듣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도 구매했다. 김 대리는 “아쉬운 찬스에 소리를 지를 뻔한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들킨 적은 없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에 근무하는 2년 차 직장인 유모 씨(28)는 동영상 플레이어 창을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 광고창에 맞춰 줄이는 비법을 주로 쓴다. ○ 야근한 만큼 딴짓한다
지나친 야근이 딴짓을 부추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2163시간.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2년 기준 28위로 바닥권이다. 설비투자 및 고부가가치 산업 투자가 적은 탓도 있지만, 오래 일하는 대신 효율은 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주일에 평균 3일 이상 야근하는 직장인 강모 씨(35)는 “부장이 퇴근하지 않아 눈치 보느라 야근을 하는 일이 많다”며 “빼앗긴 개인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근무 중에 딴짓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직장문화 콘텐츠제공업체 오피스N의 한성원 대표는 “적당한 딴짓은 일의 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지나친 야근이 딴짓을 부추기고, 딴짓이 다시 업무 비효율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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