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깬 이주열, 실세 부총리 최경환 향해 ‘일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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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통화정책에는 한계 있어”… 추가 금리인하 압박에 불쾌감
“성장률 높이려면 구조개혁 필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경제 살리기를 위한 재정·통화정책의 중요성을 매일같이 강조하고 나서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재정·통화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며 바로 견제에 들어갔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정부의 ‘추가 금리인하 압박’에 우회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총재는 24일 한은 본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거론하며 “성장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 운용이 필요하지만 재정·통화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 참석자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성장률을 높이려면 무엇보다도 경제 구조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최 부총리는 이날 정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지난주 G20 회의에서 세계경제가 저성장, 저물가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인위적 재정·통화정책의 중요성에 방점이 찍힌 발언이었다. 금융계에서는 “두 사람의 인식이 이렇게 다른 걸 보니 같은 회의에 다녀온 게 맞는지 의문”이라는 촌평이 나왔다.

이날 이 총재의 언급은 최 부총리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나왔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최 부총리는 G20 회의가 열린 호주에서 “이 총재와 와인 한 잔을 하며 얘기를 나눴다. 금리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척 하면 척’ 아니냐”며 마치 두 사람이 추가 금리인하에 공감한 것 같은 뉘앙스의 얘기를 흘렸다.

최 부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한은 간부들과 일부 금융통화위원은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잇단 발언 때문에 시장의 기대가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며 “금통위원들이 아무리 독립적으로 금리를 정하려 해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달 4일 2.54%에서 이날 2.34%로 20일 만에 0.2%포인트 떨어졌다. 그 사이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추가 인하에 유보적 태도를 나타냈지만 시장금리 흐름은 이와 상관없이 아래쪽으로만 움직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실세 부총리’의 압박 때문에 한은이 별수 없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 전반에 퍼져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동결을 고집하다가는 ‘시장과 소통이 미흡하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어 금통위원들이 매우 난감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경기 분석이나 정책 방향에 대해 최 부총리와 다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정부가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완곡하게 ‘신중론’을 피력했고, 최근 물가 상황에 대해서도 “지금은 디플레이션이라 볼 수 없다”며 최 부총리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주열#최경환#금리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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