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시장으로]<下>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꼭 필요한 기술… 사업화 성공해 차세대 먹거리로
미국의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가슴을 절제한 사실이 알려지자 유방절제수술을 결심한 여성의 수가 2.5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유방을 지키면서 종양만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김석기 국립암센터 핵의학과장팀은 1cm 이하의 초기 종양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암 수술의 안전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최근 검진법이 발달하면서 미세 종양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게 됐지만 정작 수술 중에는 종양을 정확히 볼 방법이 없어 넓은 부위를 절제해야 했다. 연구진은 나노형광기술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수술 전 종양 부위에 이번에 개발한 ‘나노형광표지자’를 주사하면 수술 중에도 밝은 빛을 내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다. 수술 부위가 줄어들기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고 흉터도 작아 수술 후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김 과장은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의료 현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것으로 지난해 한림제약과 10억 원 규모의 기술 실시계약을 맺었으며 임상시험을 거쳐 내년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의료연구들이 사업화로 이어져 생명연장의 꿈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 사례가 늘고 있다. 뇌졸중을 현장에서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뇌 영상장치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배현민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근적외선 뇌 영상장치’는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도 해상도가 뛰어나고 가격 역시 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뇌졸중을 진단하려면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와 같은 대형 장비를 써야 한다. 이 과정에 시간이 많이 허비돼 환자가 뇌 이상 증상을 보이더라도 진단이 늦어 치료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적잖다.
배 교수팀이 개발한 장비는 환자의 머리에 간단히 씌우는 방식으로 노트북에서도 분석이 가능해 이동이 자유롭다. 해상도는 기존 장비 못지않다. 현재 이 기술은 뇌 영상장치 기업인 오비이랩에 이전된 상태로, 내년에 미국을 시작으로 제품 판매에 들어가면 2017년에는 매출액이 5000만 달러(약 5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용 영상기기에 들어가는 센서를 국내 기술로 소형화한 성과도 눈길을 끈다. 윤용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은 암과 심근경색 등을 진단할 때 쓰이는 양전자 단층촬영(PET) 장치에 적용할 수 있는 ‘고(高)민감도 차세대 광센서(SiPM)’를 개발해 시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센서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적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센서(PMT)에 비해 사용 전압도 100분의 1로 줄었다. 수입에 의존하던 기존 센서들은 진공관 방식이어서 크고 무겁다. 다양한 의료용 영상기기에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산업용 측정 센서로도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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