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분기(4∼6월)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본 현대중공업의 노조는 최근 이런 요구안을 내놓고 23일부터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평균 근속기간 18년 차를 기준으로 연봉이 7200만 원가량인 현대중공업이 9400만 원이 넘는 현대차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임금 인상안을 놓고 사측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당초 추석 전에 협상이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일부 강경파가 사측 안에 반대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일부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기업분석 업체인 한국CXO연구소와 최근 4년간 국내 100대 상장사의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 1인당 영업이익이 32% 줄어드는 가운데 1인당 평균임금은 1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까지 “내수 진작을 위해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노조에 힘을 실어주자 기업들은 이른바 ‘임금 패러독스’에 빠지게 됐다. 기업들이 돈을 버는 능력은 계속 떨어지는데 임금은 계속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의미다.
○ 생산성은 하락, 임금은 상승
국내 100대 상장사의 지난해 1인당 영업이익은 2010년에 비해 32% 하락한 6900만 원에 머물렀다. 1인당 당기순이익 역시 2010년 7980만 원에서 지난해 4700만 원으로 급감했다.
반면에 조사 대상 기업의 직원 1인당 평균임금은 2010년 6337만 원에서 지난해 7082만 원으로 11%가량 늘었다. 매출 대비 임금이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2010년 4.7%에서 지난해 5.5%로 커졌다. 이철행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노사팀장은 “퇴직자보다 신규 채용이 많은 100대 기업들은 매년 덩치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인원을 꾸준히 늘려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최소한의 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대기업 11년 차 직장인인 박모 씨는 “물가 상승률만큼의 임금 인상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며 “대기업 평균으로는 임금이 꾸준히 오를지 모르지만 실적이 나쁜 상당수 기업은 수년째 임금이 동결돼 생활이 힘들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결국 봉급생활자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조사대상 기업 중 지난해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SDI로 15.6%에 이른다. 이 회사는 지난해 직원 1인당 영업손실이 평균 1500만 원, 순손실이 7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직원 수는 지난해 8500명으로 1년 사이에 1000명이 늘고 1인당 평균임금도 1.1%(87만 원) 상승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SDI의 경우 직원 수와 임금은 늘었는데 생산성은 하락한 것으로 최근 이 회사가 인력 감축안을 꺼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을 위주로 임금 인상이 이뤄지면서 중소기업(상시 종업원 300명 미만)과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1년에는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직원들이 대기업 임금의 65.9% 수준을 받았지만 이 비율은 지난해 5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 대기업만의 임금 인상은 내수진작에 역부족
대기업 위주의 임금 인상이 정부가 바라는 내수 진작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고용과 임금이 보장된 대기업 정규직과 고용의 8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철저히 분리된 이른바 ‘이중 노동시장’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임금 인상이 중소기업에 대한 단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긴밀한 생산고리가 이어진 상황에서 대기업이 무리하게 임금을 올리면 결국 중소기업에 대한 단가 하락으로 이어져 전체적인 내수 소비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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